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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나주당일여행 3] 서성문(영금문), 동학농민운동의 아픔이 서린 곳

by 드래곤포토 2015.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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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의 아픔이 서린 곳, 나주 서성문(영금문)

나주향교를 나와 바로 60m정도 떨어져 있는 서성문(西城門)으로 향했습니다. 영금문이라고도 불리우는 서성문은 2011년도에 복원한 나주읍성의 서쪽 성문입니다.

서성문은 구한말(1894) 동학 농민군이 나주를 공격할 때 공략대상이기도 하였으며, 동학농민군의 우두머리 전봉준이 서성문으로 찾아와 당시 나주목사였던 민중렬과 협상을 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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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읍성은 고려 건국 이후 짓기 시작한 성으로 일제강점기에 하나둘 허물어졌던 것을 1993년부터 복원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나주향교를 나오면 바로 서성문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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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문 앞쪽은 성문의 공격을 막기위한 반월형 옹성이 둘러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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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읍성은 고려시대 부터 축조되기 시작하여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수차례 성벽을 확장하거나 다시 쌓아 면모를 갖추었습니다.

원래 길이는 약 3.53km로 평지에 남북으로 긴 타원 형태로 쌓았으며 동쪽에 동점문(東漸門), 서쪽에 서성문(西城門 : 영금문), 남쪽에 남고문(南顧門), 북쪽에 북망문(北望門)이라 하여 사방에 성문을 두었습니다.

1916년 부터 1920년 사이에 남고문이 마지막으로 철거된후 성벽 터는 대부분 민가가 들어서거나 밭으로 경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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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문 남쪽으로 옛 나주읍성터의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허물어진 성터가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부패한 봉건 왕조의 상징이었던 읍성의 성문들은 일제에 의해 허물어졌지만 가난했던 서민들은 성터를 허물고 달동네를 형성하였습니다.

지금은 나주읍성 복원계획에 의거 성터에 있던 가구들은 모두 철거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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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망문은 확인해 보질 못했으나 다른 성문은 입구가 홍예식(무지개식)으로 되어 있으나 서성문의 성문형태는 성문의 위부분이 판석이 아닌 나무로 만들어진 개거식 성문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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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남고문(南顧門), 2006년에 동점문(東漸門), 2011년 서성문(西城門)을 복원하였습니다. 서성문은 2009년 6월부터 3년여의 기간동안 성문 문루(門樓)와, 성문을 보호하는 시설인 옹성(甕城) 21.94m 등을 복원하였습니다.

나주읍성 4대문 중 마지막으로 복원될 북망문(北望門)은 아직 복원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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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금문((映錦門)은 2007년 발굴조사 결과 지하에 유적이 잘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문헌에 주로 서성문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나지만 1815년에 편찬된 것으로 전하는 나주목여지승람에 동남북 삼문에는 편액이 없으며 서문에만 영금문이라는 편액이 있다는 기록에 따라 역사를 기록하는 의미에서 영금문 편액을 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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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문을 지나 나주읍성 밖으로 나가면 전국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유서깊은 나주향교와 금성산 줄기인 월정봉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조선시대 영금문(서성문) 밖에는 사직단과 나주의 대표서원이었던 월정서원이 있었으나 해방이후 모두 없어졌습니다.

여행 TIP

▷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시 서내동 118    

나주 서성문(영금문) 위치도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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