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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구례여행] 운조루, 고택이 품은 나눔의 정신

by 드래곤포토 2015.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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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인능해정신으로 이어온 고택, 운조루(雲鳥樓)

중요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된 구례 운조루는 조선 영조 52년(1776)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내 유이주가 세운 집으로 조선시대 양반가 주택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 몇 안되는 건축물입니다.

운조루는 그저 크고 오래된 저택이 아니라 운조루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진정한 이웃을 생각하는 다뜻한 배려의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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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 앞에는 연못이 있습니다. 운조루 뒤로는 지리산자락이 앞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들판너머로는 멀리 섬진강이 흐르는 곳 이곳이야말로 금환락지입니다.

지상에서 목욕을 한 선녀가 하늘로 오르다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것을 금환락지(金環落池)라 합니다. 예로 부터 사람들은 부귀영화가 마르지 않은 곳이라며 이자리를 조선 3대 명당자리라 하였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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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집을 지을때 풍수의 입장에서 대지를 잘골라서 집을 지었습니다 운조루의 대문은 길게 이어진 행랑채사이로 행랑채 지붕보다는 높게 만들어진 솟을 대문입니다.

운조루가 호남지역에서 보기힘든 양식인 것은 이를 지은 사람이 경상도 출신의 무관 유의주 였기때문입니다. 그는 낙안읍성과 수원 화성같이 당대의 유명한 건축물을 축조한 뛰어난 기술자이기도 했습니다.

풍수에도 안목이 높았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조선의 3대 명당중의 하나인 이 곳에 7년간의 대공사를 거쳐 운조루를 지었습니다. 운조루는 원래 99칸 건물이었으며 조선후기 양반가옥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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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명당에 자리한 대저택 운조루는 전라도에서 보기 힘든 양반의 가옥입니다. 건물의 배치가 ㅁ자로 대문에서 들어가면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를 지나 중문간채가 있으며 중문간채를 지나면 안채가 있는데 전라도 지방의 건물은 따로 떨어져 있고 한 ㅡ자 배치인데 운조루는 ㅁ자배치입니다. 이런 것은 경상북도 지방 등 추운지방에서 나타나는 건물배치 형식입니다.  


IMG_0495P 작은 사랑채와 바닥에 있는 굴뚝

운조루는 작은것에도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여느 양반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높게 쌓은 굴뚝을 운조루에서는 볼 수가 없습니다.

밥짓는 연기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굴뚝을 낮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는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이 집의 굴뚝 연기를 보면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이웃에 대한 배려라고 합니다.  


IMG_0487 작은 사랑채

운조루에는 보통의 양반가옥에서 보기힘든 독특한 공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안사랑채가 없어졌지만 서쪽으로는 남성들의 사회적교류장소인 큰 사랑채가 있었고 동쪽에 여성을 위한 안사랑채가 있었습니다.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그림에 운조루의 안사랑채가 보이는데 이처럼 여성을 위한 공간과 남성을 위한 공간을 대등한 위치에 좌우로 배치한 것은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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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와 사랑채사이엔 안채 부엌문앞으로 우물이 놓여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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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은 지금도 살림을 하는 듯하며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IMG_0506 안채마당

부엌쪽을 통해 안채를 들어가보니 안채엔 ㅁ자구조로 되어 있고 안채 마당엔 맷돌, 장독등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IMG_0510P 안채

안채에 들어서면 여성을 위한 작은 배려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여성들이 기거했던 안채에는 비밀공간이 있는데 안채의 다락방에서는 바깥세상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습니다.

다락방에는 먼들판을 바라볼 수 있는 조망창과 전망창이 있어 여성들의 바깥 출입이 쉽지 안았던 시절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IMG_0552 타인능해

행랑채에서 걸어올라가면 나타나는 중문간에 운조루가 품어온 보물중의 보물이 있습니다 240년간 이자리를 지키고 있는 쌀독으로 커다란 나무통에 '他人能解(타인능해)'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둥근 소나무에 두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쌀통 아래부분에 네모로 구멍을 판다음 네모반듯한 마개를 막아서 거기에 손잡이를 두고 구멍을 아래 뚫어 손잡이를 돌리면 쌀이 밑으로 흘러내리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는 끼니를 이을 수 없는 이웃들이 마음놓고 쌀을 가져 가도록 한 것으로 타인이 능히 마음놓고 마개를 풀 수 있다해서 '타인능해'라고 한문으로 써놓았습니다.

운조루의 쌀독은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이 언제나 찾아와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항상 개방되어 있었습니다. 어려운 이웃에 대한 나눔의 정신이 수대에 걸쳐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각종 민란, 동학, 여순사건, 6.25 등 힘든 역사의 시간을 지내오면서도 운조루가 지금처럼 건재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바로 이 타인능해의 정신 때문이라 합니다.  


IMG_0539 사랑채

사랑채 오른쪽방입니다. 방에는 아마도 체험행사시 사용하는 듯 옛 의상이 걸려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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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마루와 사랑채 오른쪽 가운데 있는 방입니다. 바닥은 마루로 되어 있어 이 곳 왼쪽 문을 열면 누마루 입니다. 지금은 가옥전체를 운조루라 부르지만 사실은 누마루의 이름이 운조루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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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속에 새처럼 숨어사는 집이라는 뜻의 운조루는 중국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따온 것으로 자연속에서 살고 싶었던 집주인의 바람이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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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조루는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집'이란 그 이름처럼 누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날아가던 새도 잠시 숨을 고를 만큼 아늑합니다.

운조루의 누마루 기둥은 자세히 보면 각각 호랑이무늬, 물결무늬, 나비무늬처럼 보입니다. 운조루 9대 종부 이길순 여사가 기둥의 무늬를 설명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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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수레바퀴로 쓰여쓸 듯한 나무바퀴가 누마루 밑에 놓여있습니다. 바닥의 기둥 무늬도 독특합니다.  


IMG_0559 행랑채P

솟을 대문 동서 양쪽으로 나란히 행랑채가 늘어 서 있습니다. 주로 하인들이 기거하거나 창고로 쓰이던 행랑채가 24칸 이나 있었던 것을 볼 때 당시 유씨가문의 부와 권세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운조루의 행랑채는 우리나라 사대부의 집중에서 가장 길고 끈 행랑채라 합니다. 가운데 칸은 사람이 드나드는 칸이고 양쪽 칸들은 집에서 부리는 노비들이 양쪽의 2~3칸 정도 사용하였으며, 그 나머지는 농기구, 곡식 등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한 것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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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면서 보니 행랑채 대문 옆으로 쪽문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대문을 열기전에 하인이 드나드는 사람을 쉽게 알 수 있는 경비실 역활한 것 아닌 가 싶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 격변기때 대부분의 지주들의 집이 파괴되었지만 여기 운조루는 동네사람들이 앞장서서 막아 훼손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240여년 동안 11대에 거쳐 가풍처럼 이어져온 '타인능해'정신이 운조루를 건재하게 한 이유였습니다.

이외에도 운조루는 문화재 도둑들의 극성에 여기에 거주하던 후손들이 강도를 당하기도 하고 유품을 도난을 당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대대손손 집을 지키면서 살아온 이런 후손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박제된 문화재가 아니라 선조들이 다뜻한 온기가 살아있는 숨쉬는 온조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하늘이 내린 명당, 그땅이 주는 기운을 이웃에게 나누어 준 사람들, 운조루에는 수백년의 세월동안 그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이어져 왔습니다. 운조루는 그저 크고 오래된 저택이 아니라 운조루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진정한 이웃을 생각하는 다뜻한 배려의 정신입니다.

여행 TIP

▷소재지 :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 운조루길 59 (오미리 103)  운조루 
▷입장료 : 어른 1,000원, 학생 700원, 어린이 무료
▷관람시간 : 09:00~18:00
▷전화 : 061-781-2644 
 


구례 운조루 위치도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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