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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11

이천의 별, 어재연장군 생가 이천의 별, 어재연 장군생가 어재연 장군은 조선말기의 무신으로 1866년 흥선대원군의 천주교탄압사건으로 프랑스함대가 침입한 병인양요때 선봉장으로 강화도 광성진을 수비하였습니다. 이후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를 불태워 1871년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어재연 장군을 강화도 광성진을 수비케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세한 무기를 가진 미군과 싸우다 동생 어재순과 함께 전사하였습니다. 어재연 장군의 생가는 경기도 율면 산성리에 있어 장군의 생가를 둘러보았습니다. IMG_3826 어재연 장군생가는 경기옛길 부근에 있습니다. 지금은 일생로라는 이름의 2차선 국도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서울에서 출발, 문경새재를 넘어 상주에서 대구를 경유하여 부산까지의 최단거리 노선이라 합니다. 과거에는 한양에서 부산 동래까지 이어지는 .. 2018. 4. 6.
봉화 소강고택, 춘양목으로 지어진 전통가옥 춘양목으로 지어진 전통가옥, 봉화 바래미마을 소강고택 경북 봉화에 있는 바래미마을은 전통문화마을로 지정된 곳입니다. 마을전체가 해상보다 낮은 지역이라 바다밑 아래 즉 바래미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마을의 논이나 밭에서 조개껍데기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바래미마을은 과거에 급제하거나 벼슬에 오른 선비들이 많은 의성 김씨 집성촌입니다. 1992년 도지정 전통문화마을로 지정되어 그나마 잘 정비가 되어 있는 곳입니다. IMG_8033P 바래미마을에는 남호구택, 만회고택 등 전통 가옥이 많으나 숙박체험을 해본 소강주택을 소개합니다. 소강주택의 대문은 전통적인 솟을 대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IMG_8033R 대문에 들어서니 사랑채가 우선 눈에 들어오고 주인 어른장께서 인기척을.. 2017. 6. 3.
월정 윤근수의 도검과 옥장식, 조선 선조왕 하사품 월정 윤근수 윤근수 선생은 조선 중기 중종 32년(1537)부터 광해군8년(1616)까지의 문신이며 학자로 호는 월정(月汀)이고 본관은 해평(海平)입니다.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명종 13년(1558), 문과에 급제하여 경기도 감찰사, 강릉도호부사, 형조판서, 정헌대부 등을 지내셨으며 임진왜란 중에는 명나라에 9번이나 왕래하면서 외교를 전개하여 지원을 받도록 해 국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이, 율곡과 함께 정치와 학문을 연구하였고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저서로는 월정집, 월정만필, 조천록, 사서토석, 송도지, 마한사초, 조경창수 등이 있으며 글씨에 능하여 그의 서체를 영화체(永和體)라 하여 격찬을 받았다고 합니다. 선조가 하사한 보도(寶刀)와 옥(玉)장식 2015년 10월 양주 .. 2015. 12. 26.
[구례여행] 곡전재, 조선후기 부농의 민가 조선후기 부농의 민가, 구례 '곡전재' 전남 구례에 있는 곡전재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조선후기 부농의 고택으로 땅의 지세가 풍수지리상으로 선녀가 떨어뜨린 금가락지 모양의 땅이라고 해서 금환락지(金環洛地)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높은담이 인상적인 곡전재는 명당 중에 명당에 지은 집으로 유명합니다. IMG_0568P 섬진강이 흐르고 있는 전남 구례 오미리 오미마을에는 운조루 외에 곡전재라는 고택이 있습니다. 오미마을 주차장에서 남쪽으로 조그만 성벽같은 돌담길을 따라 돌면 곡전재 대문이 있습니다. IMG_0570 구례군 향토문화유산 2003-9호로 지정되어 있는 곡전재는 여느 고택과는 달리 높은 담장이 인상적이며 대문은 솟을 대문으로 대문위에 다락방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다락방에서는 문을 앞뒤로 열수 있어.. 2015. 12. 23.
[구례여행] 운조루, 고택이 품은 나눔의 정신 타인능해정신으로 이어온 고택, 운조루(雲鳥樓) 중요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된 구례 운조루는 조선 영조 52년(1776)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내 유이주가 세운 집으로 조선시대 양반가 주택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는 몇 안되는 건축물입니다. 운조루는 그저 크고 오래된 저택이 아니라 운조루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은 진정한 이웃을 생각하는 다뜻한 배려의 정신입니다. IMG_0566 운조루 앞에는 연못이 있습니다. 운조루 뒤로는 지리산자락이 앞으로는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들판너머로는 멀리 섬진강이 흐르는 곳 이곳이야말로 금환락지입니다. 지상에서 목욕을 한 선녀가 하늘로 오르다가 금가락지를 떨어뜨린 것을 금환락지(金環落池)라 합니다. 예로 부터 사람들은 부귀영화가 마르지 않은 곳이라며 이자리를 조선 3대 .. 2015. 12. 21.
[봉화여행] 만산고택, 춘양목과 현판글씨의 위엄 춘양목과 현판글씨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봉화 '만산고택' 경북 봉화(奉化)의 춘양면(春陽面)은 한반도 최고의 목재를 생산하던 곳으로, 춘양에서 생산된 소나무인 춘양목은 궁궐이나 관청, 지체 높은 양반의 집을 건축할때나 사용이 가능했습니다. 이 곳 봉화에 춘양목으로 지은 지 벌써 130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만산고택(晩山古宅)이 있습니다. 봉화 만산고택은 조선 말기 문신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와 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을 지냈으며 말년에 도산서원장을 역임한 만산 강용(晩山 姜鎔:1846~1934) 선생이 고종15년(1878) 지은 집으로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문화제 제27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IMG_8371P 만산가옥의 앞쪽에는 11칸의 긴 행랑채가 있고, 가운데에는 솟을 .. 2015. 9. 28.
[봉화여행] 가평리 계서당, 춘향전의 실존인물 이몽룡 생가 춘향전의 실존인물 이몽룡 생가, 계서당 봉화여행시 알게된 사항인데 우리가 알고있는 춘향전에 등장하는 이몽룡의 실제인물이 봉화에서 살고 있었다고 하네요. 이몽룡의 실제인물은 계서(溪西) 성이성(成以性)이라는 분인데 선조 28년(1595) 경북 봉화(옛, 영주)에서 태어나 현종5년(1664)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성이성 선생은 13세(1607)되던해 남원부사로 발령받은 아버지 부용당 성안의(成安義)를 따라 남원으로 가서 살다가 17세 되던 해 아버지가 광주목사로 전보되어 남원을 떠나게 됩니다. 이후 성의성 선생은 22살에 과거시험을 보고 33살에 문과급제하여 경상도, 충청도 암행어사를 거쳐 세번째로 호남 암행어사로 발령받아 45살인 1639년에 남원으로 가게됩니다. 성이성 선생은 어린시절의 스승인 문장가 .. 2015. 9. 23.
[양주여행] 월정공 윤근수 생가, 양반 주거건축문화의 전형적 한옥 양반 주거건축문화의 전형적 한옥, 양주 월정공 윤근수 생가 윤근수(尹根壽)는 조선 중기인 중종 32년(1537)부터 광해군8년(1616)까지의 문신이며 학자로 호는 월정(月汀)이고 본관은 해평(海平)입니다. 퇴계 이황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명종 13년(1558), 문과에 급제하여 경기도감찰사, 강릉도호부사, 형조판서, 정헌대부 등을 지내셨으며 임진왜란 중에는 명나라에 9번이나 왕래하면서 외교를 전개하여 지원을 받도록 해 국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월정공 윤근수(尹根壽)선생은 52세 때 조선 선조22년(1589) 형조판서에 임명된후 집, 밭, 노비를 하사받아 자자손손 대를 이어 양주 옥정리에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월정공 윤근수 생가고택(月汀生家古宅)은 상량문에 함풍사년갑인(咸豊四年甲寅).. 2015. 7. 17.
[대만여행 14] 임안태고조(린안타위구춰), 청나라시대의 대저택 청나라시대의 대저택, 대만 린안타위구춰 (임안태고조) 18세기 청나라 복건성(福建省 푸젠성)에서 대만으로 이주한 린안타이(林安泰 임안태)라는 상인의 일가족이 살던 곳으로 16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대만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대저택입니다. 이 저택은 원래 쓰웨이루(四推路 사추로)에 있었는데 1978년 도로 건설로 지금의 자리로 이전되어 1987년에 재건립되었습니다. IMG_2206 임안태고조 대문 임안태 상인의 저택은 낡은 기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돌과 목조재질은 원래의 건물에서 그대로 옮겨왔습니다. 따라서 청대의 민가를 그대로 재현한 점에서 건축학적으로도 보존 가치가 높다고합니다. IMG_2208 임안태고조 대문 IMG_2318 임안태고조와 정원 겉으로는 아담해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 2014. 9. 18.
[영주여행] 무섬(수도리)마을, 물위에 떠있는 섬 물위에 떠있는 섬 같은 무섬(수도리)마을 경북 영주 무섬마을은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 제278호로 지정된 곳으로 조선중기 이래 집성촌이자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의 지역 구심체 역활을 한 곳입니다. 무섬마을은 17세기 중반 터를 처음 잡은 반남박씨와 선성김씨의 집성촌으로 전통가옥 36호가 있는 등 유서깊은 전통마을입니다.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의 우리말 이름으로 삼면이 내성천과 접한 전형적인 물도리 마을입니다. 마을 앞을 돌아나가는 내성천과 주변 산이 태극 모양으로 서로 안고 휘감아 돌아 산수의 경치가 절경을 이루는 곳입니다. 그러나 제가 간날은 애석하게도 소나기가 쏱아져 우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면서 다니자니 보통일이 아니었습니다. IMG_8664 무섬마을 입구 주.. 2013. 9. 25.
[경북 군위여행] 어린시절 신앙과 꿈을 키운 '김수환 추기경 생가' 경북 군위에는 김수환 추기경 생가가 있습니다. 여기 초가집은 2009년 2월 16일 선종하신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께서 다섯 살 되던 해 이사와 군위보통학교를 마치고 소신학교에 입학하기전까지 살던 곳입니다. 추기경은 군위 보통학교를 마치고 지금 대구 가톨릭대의 전신인 성유스티노 신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이 집에서 형인 동한(가롤로) 신부와 함께 어린시절을 보내며 신앙과 꿈을 키웠으며, 생전에 가끔 이 집을 찾아와 어린 시절을 회상하였습니다. IMG_0101 김수환 추기경 생가 전경 IMG_0104P 군위읍에서 927번 도로를 따라 탑리쪽으로 가다보면 우측에 용대리 및 김수환추기경 생가 안내판이 보이며 좌측에 주차장이 있습니다. IMG_0103 추기경의 집안은 원래 충남 논산군 연산의 양반가문으로 충청도 .. 2011. 1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