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경주 가볼만한 곳 추천 여행지

by 드래곤포토 2022. 2. 21.
반응형

경주 가볼만한 곳 추천여행지

신라시대의 수도였던 경주는 다양한 불교문화유적지를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져있는 곳입니다. 경주는 잘 알려진 관광지만 많지만 제가 다녀온 곳을 중심으로 가볼만한 곳을 몇군데 소개합니다.

■ 엎어져 있지만 콧날이 멋진 경주남산 '열암곡 마애불'

석불좌상의 복원을 위해 경주 남산 최남단인 열암곡에서 석불의 조각을 찾던 중 2007년 5월, 40도 경사로 엎어져 있는 마애불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발견된 열암곡 마애불은 아직도 거대한 무게때문에 일으켜세우지 못한채 엎어져있는 상태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박소희 연구원이 2007.5.22 발견당시 발과 옷의 끝자락만 보였으나 지금은 주변의 흙을 파내어 엎어진 마애불의 옆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엎어져있는 마애불의 옆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타원형의 얼굴에 코가 오뚝하고 도톰한 입술을 가진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얼굴입니다.

마애불의 옷모양은 새의 몸통인양 옆은 날개처럼 겹겹히 주름모양을 꾸며져 있습니다. 불상의 전체 모습을 볼 수는 없으나 옆면의 모습을 보아서도 섬세하게 조각된 작품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바닥과 마애불의 코가 5cm정도의 간격으로 떨어져 있습니다.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는데 마애불의 코는 그대로 있어 이를 프랑스의 신문에서는 5cm의 기적이라 표현했다고 합니다.

발견이후 마애불을 세우느냐 마느냐를 놓고 고민을 했다고 합니다. 중장비 동원하면 길을 내는 등 더 훼손우려가 있고 80톤의 무게를 들만한 장비가 없으며 설사 있다하더라도 작업중 파손의 우려가 있어 결국 현상태로 보존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머리에서 발 아래 연화 대좌까지 전체 높이 560㎝, 총무게는 80톤에 달하는 대형 마애불을 보면서 엎어져 있는 돌부처를 현대의 기술로도 일으켜 세우기 힘들다고 합니다.

80톤이나 하는 마애불이 어떻게 넘어진건지 아님 어떻게 넘어뜨린건지 불가사이합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1430년 진도7에 가까운 대형 지진으로 넘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최근들어 불교계에세 바로 세우기를 추진한다고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열암곡 마애불 위쪽에는 열암곡 석불좌상이 있습니다. 여기 석불좌상을 복원하기 위하여 주변에 흩어져 있는 불상 조각들을 찾는 작업중에 마애불이 발견되었습니다.

열암곡 석불좌상은 여러 조각으로 파손되어 주변에 흩어져 있었으나 2005년 답사하던 한 시민에 의해 불상의 머리가 발견됨에 따라 흩어져 있는 조각을 모아 2007년~2008년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수 정비하여 팔각의 받침돌등 모자라는 부분은 새로 만들어 세워놓은 것입니다.

불상의 코와 입주변은 마멸이 심한 상태입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시대 조각의 양식과 수법을 따르면서도 옷주름이나 다소 경직된 인상 등은 석굴암 본존불상과는 다른 요소도 지니고 있어 조성 시기는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으로 추정됩니다.

석불좌상의 광배 뒷면을 보면 조각이 붙어져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광배(光背)는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하여 머리나 등 뒤에 광명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비함과 위대함을 상징할 때 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경주 남산에는 63개 골짜기에 크고 작은 유적이 널려있습니다. 그 중 열암곡은 경주 남산 최남단으로 신라시대 당시에도 한적한 곳으로 절터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열암곡의 엎어져 있는 마애불과 석불좌상을 보면서 누가 어떤이유로 이처럼 훼손을 하였는지도 궁금하지만 우리의 옛 역사문화를 보존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합니다.

☞여행 TIP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산 123
▷안내 : 054-779-6109

■ 신라의 첫출발지 '창림사지 3층 석탑'

경주의 창림사지는 8~9세기 경에 세워진 절터입니다만 인근에 박혁거세의 탄생지인 '나정'과 신라 6촌의 촌장을 모시는 사당인 '양산재'가 있어 창림사지 일대를 신라 건국 초창기의 궁궐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복원된 3층석탑만 홀로 서있는 황량한 창림사지는 신라의 첫출발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

1층 몸돌에는 사방에 문 모양이 새겨져 있고 문고리 모양도 양각되어 있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영(靈)이 드나드는 문임을 나타내는 것이라 합니다.

3층석탑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양식이며 통일신라 후반기에 가면서 장식적인 면이 많이 나타나면서 기단부에 불교를 수호하는 수호신상을 각면에 조각을 하였습니다.

2층 기단부 쪽에 8면에 걸쳐 각상(像)이 원래 새겨져 있었으나 복원하는 과정에서 훼손되어 있는 부분에 새로운 돌들로 채워놓았습니다. 그래서 8개의 상들이 모두 보이질 않고 4개의 상만 볼 수 있습니다. 이때문에 정식 문화재로 지정되지는 못했습니다.

창림사지 삼층석탑은 원래의 모양이 아니고 주변에 흩어져 굴러다니던 탑재들을 모아 1976년에 다시 복원한 것입니다. 탑모양을 자세히 보면 옛날 돌하고 새로 채워놓은 돌하고 섞여 있습니다.

복원하면서 2층과 3층 탑신(몸돌) 그리고 기단의 절반 정도를 새로 다듬어 끼워 넣었습니다. 탑은 기단부와 탑신부만 있고 상륜부는 없는 상태로, 기단부가 2층으로 되어 있어 규모가 더욱 커 보입니다.

이 곳 창림사지(昌林寺址)는 삼국유사에 신라 최초의 궁궐지로 기록된 유서 깊은 곳입니다. 창림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 되었고 고려 때까지 존속되어 오다가 조선초기에 폐사되어 탑만 남아 있었습니다.

1824년에 석탑은 사리 장엄구를 도굴하려던 자에 의해 무너졌고 이 때 조탑사실이 기록된 창림사 무구정탑원기(無垢淨塔願記)가 나와 이 탑이 신라 문성왕 17년(855)에 건립된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여행 TIP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858-6 (남간사지 당간지주)
- 승용차를 이용하시는 분은 양산재앞에 주차를 하시고 걸어가시는 게 좋습니다.

■ 황룡사9층 목탑이 새겨진 '부처바위' / 남산 '탑곡 마애조상군'

경주 남산 탑곡은 동남산의 북쪽에 있는 계곡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神印寺)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나 지금은 옥룡암이라는 암자가 들어서 있습니다.

이 곳에 신인사 3층 석탑이 있어 탑곡이라 하는 설과 탑이 새겨진 부처바위(마애조상군)가 있어 탑곡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옥령암 대웅전에서 우측으로 관음전 건물과 왼쪽으로는 큰바위가 보이는데 이바위가 부처바위라 불리는 탑곡 마애조상군입니다.

부처바위의 공식명칭은 경주 탑곡 마애조상군(磨崖彫像群)으로 보물 제 201호입니다. 이명칭은 높이 약 10m, 사방둘레 약 30m의 바위와 주변의 바위면에 여러개의 상이 새겨져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신인사 탑곡마애불상군 또는 탑곡마애불상군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바위하나에 동서남북으로 여러 상이 한자리에 새겨진 바위는 보기 드문 일이며 지금까지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총 34점의 도상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큰바위에는 종같은 그림이 좌우에 2개 새겨져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그림은 종이 아니라 목탑을 표현한 것으로 왼쪽 목탑은 황룡사 9층 석탑을 나타내는 것이라 합니다. 오른쪽 7층 석탑은 무엇을 나타내는지 모르겠지만 형태는 똑같습니다.

9층 목탑과 7층 목탑이 새겨진 바위 사이 가운데에는 면류관을 쓴 석가모니 불상이 연꽃 위에 앉아있는 그림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단부 좌우엔 석가모니불을 호위하듯 사자 두마리가 마주하고 있습니다.

부처바위 동쪽면에는 가운데에 여래상이 그리고 그 주위는 비천상(飛天像), 승려상, 보살상, 인왕상(仁王像) 등이 새겨져 있습니다. 동면에는 불좌상과 보살상, 7존의 비천상이 자유롭게 새겨져 있으며, 바위의 가장 자리 부분에는 두 그루의 나무 사이에 앉아 있는 승려상과 나무 아래에서 참선하는 승려상이 조각되어 있다.

남쪽면은 바위 위쪽으로 좌측으로 보살상이 홀로 우뚝 자리하고 그 오른쪽으로 승려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우측 넓은 바위면에는 특이하게 붉은 빛을 띄는 삼존불이 새겨져 있습니다.

경주 탑곡 마애불상군에는 불상이외에도 수행하는 승려 모습이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를 볼때 경주 남산이 신라의 승려들에게는 수행하는 장소였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역시 수행하는 장소는 예나 지금이나 공기좋고 물맑은 곳이 이용되는 것은 마찬가지 인것 같습니다.

☞여행 TIP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배반동 1115 옥룡암
▷전화 : 054-748-0688

■ 경주 남산에 서있는 백제계 탑 '능비봉 5층 석탑'

해발468m의 경주 남산은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산으로 보물 13점, 사적 13개소, 지방유형문화재 11점, 문화재자료 3점 등 많은 문화유적지로 가득 차있습니다. 어느 방향에서 산을 오르던 곳곳에 유적과 유물이 산재해 있는 산입니다.

포석정 주차장에서 40여분 오르면 도달할 수 있는 곳, 자연의 아름다움과 우리 선조들의 미가 어울어진 경주 남산 늠비봉에 백제계 석탑이 우뚝서서 경주 시내를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는 남산 포석곡 일대 유적,유물 등을 원래대로 복원정비사업을 하였는데 복원대상 9개의 절터 중 그 하나가 늠비봉 5층석탑(포석곡 제6사지 5층석탑)입니다.

늠비봉 5층 석탑은 능비봉 암반 주변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석재들을 다시 모으고 부족한 부재들은 새로운 석재를 만들어 붙여 늠비봉 5층 석탑을 2002년 2월 새로 복원하였습니다.

석탑을 보면 옛 석재와 새로 갖다 붙여놓은 석재가 조립되어 있어 색깔 차이가 뚜렷합니다. 새로 조립하여 복원된 탑이라 늠비봉 5층 석탑은 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늠비봉 5층 석탑 서쪽방향에 있는 암반을 보면 자연암반위에 석탑을 세운것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신라계 양식은 2중 기단으로 탑을 쌓아올릴때 기단아래를 네모반듯하게 깍아세우는데 늠비봉 5층석탑의 기단은 한층으로 되어 있고 그 기단부와 자연암반 사이에 돌들을 보면 자연암반의 굴곡에 맞추어 돌을 깍아서 거기에 맞추어놓고 쌓아올린 흔적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을 그랭이 공법이라 하는데 그랭이 공법은 불굴사 건축양식에서도 볼 수 있으며 늠비봉 5층 석탑에서도 그랭이 공법으로 쌓은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경주지역에서 5층 석탑은 통틀어 2개라 합니다. 그 하나가 통일신라시대 석탑인 나원리 5층 석탑, 두번째가 늠비봉 5층 석탑입니다. 5층석탑은 신라의 전형적인 고유 석탑양식은 아니고 기본적으로는 백제탑 양식입니다.

늠비봉 5층 석탑의 건립시기는 10세기 이후 고려시대 초로 추정하고 있습니다만 경상도 지역에서 신라시대 석탑양식을 벗어난 백제계 석탑양식이 도입된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늠비봉 5층 석탑은 석탑의 위치, 역사적 의미와 경주 시내를 볼 수 있는 전망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으며 특히 경주 야경이 아름다워 야경을 보기위해 저녁때 늠비봉에 올라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여행 TIP

▷소재지 : 경주시 배동 454-1(포석정)
▷전화 : 054-745-8484

■ 경주의 조선시대를 간직한 '경주양동마을'

경주 양동마을은 1984년 12월 20일 마을 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된 마을로 경주손씨와 여강이씨 종가가 500여년 동안 전통을 이어온 씨족마을로 조선시대부터 이어온 마을입니다.

우리나라엔 6개의 전통민속마을이 있습니다만 어느 곳보다 마을의 규모, 보존상태 등 볼거리가 많은 곳으로 1992년엔 영국의 찰스 황태자가 이 곳을 방문하였습니다.

경주 양동마을은 500년이 넘는 54채의 기와집과 고즈넉한 110여채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양반가옥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낮은 지대에는 주로 하인들이 살던 초가집이 주인집인 양반가옥을 에워싸고 있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관가정 우측으로는 향단 건물이 보입니다. 향단은 내부수리중인지 출입을 금하여 들어가 보질 못했습니다. 향단은 보물 제 412호로 마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에 있습니다. 기와집의 일반적 격식에서 과감히 벗어난 형식으로 원래 99칸이었으나 6.25동란으로 파손되어 현재는 56칸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하촌위에 있는 초가집입니다. 제가 보긴엔 초가집은 벽이 황토색으로 칠해져 있는 등 현대화된 초가집으로 옛모습의 초가집은 아닌것 같습니다. 그동안 너무 한옥위주의 보존으로 초가집은 거의 문화재가 없는 것 같습니다.

경주양동마을에서는 강학당, 심수정, 두곡고택, 사호당고택, 서백당 등 다수의 중요민속문화재 건물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복원이라는 미명하에 살던 사람들 다 내쫓고 덩그러니 빈집들만 모셔두는데 경주양동마을은 선조들의 전통을 이어 삶을 이어가고 옛 생활공간과 함께 보존하고 있으니 나름 역사를 이어간다는 의미가 있는 마을이기도합니다.

50~60대에개는 양동마을이 본인들의 어릴적 고향과 닮은 모습을 회상시켜주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우리 조상들의 삶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입니다. 신라의 모습이 가득한 경주에 조선시대 모습이 있다는 것으로 우리의 편견을 깨주는 곳이기도 합니다.

☞여행 TIP

▷소재지 :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34
▷입장시간 : (4~9월) 09:00~19:00, (10~3월) 09:00~18:00
▷전화 : 070-7098-3569
▷입장료 : 어른 4,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500원(신분증을 소지한 경주시민은 무료)

■ 명품 소나무 숲이 있는 '신라 흥덕왕릉'

신라 흥덕왕은 제42대(재위 826~836) 왕으로 지금의 전남 완도에 청해진을 두고 장보고를 대사로 삼아 해상권을 장악하였으며 당나라에서 차씨를 들여와 재배하도록 한 왕입니다.

흥덕왕릉은 신라 56명의 왕가운에 유일하게 합장한 릉으로 경주 북쪽 외곽에 자리하고 있으며 오히려 포항에 가까운 지역입니다.

이 곳은 1977년 국립경주박물관과 사적관리 사무소의 발굴조사때 상당수의 비석 조각과 함께 흥덕이라 새긴 비석 조각이 나와 흥덕왕의 무덤임이 밝혀졌습니다.

흥덕왕릉은 1963년 사적 제 3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신라 역대왕릉 중에서 규모가 크고 형식이 완전히 갖추어져 있다고 합니다.

흥덕왕은 임금이 된 첫해에 왕비인 장화부인이 죽었으며 이후 11년 동안 장화부인만 생각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왕의 유언에 따라 합장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왕이 여러부인을 거느릴 수 있는 시대에 왕비와 합장하였다는 것은 흥덕왕이 장화부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알 수 엿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왕릉 주변에는 돌난간이 둘러쳐져 있으며 왕을 네귀퉁이에 돌사자가 있고, 무덤의 앞 왼쪽에는 비석을 세웠는데 지금은 비석을 받쳤던 거북이 모양의 받침돌만 손상된 채 남아있습니다.

밑둘레 65m, 직경 22.2m, 높이 6.4m 되는 흥덕왕릉의 둘레에는 호 석에 십이지신상을 새겼고 그 주위로 돌난간을 둘렀습니다.

왕릉 앞쪽에는 문인석, 무인석을 세웠는데 무인석은 복장과 얼굴을 보면 아랍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모습을 통해 당시 아랍인들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에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다문화민족 국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흥덕왕릉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숲은 천년의 세월동안 왕릉을 뒤덮지 않고 주변에서 뒤틀리고 엉킨모습으로 천년을 지내온 명품숲입니다. 제가 찾아간 시간이 오후 3시이전 인데도 땅거미가 지는 듯 명품 소나무숲은 그림자 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흥덕왕릉의 문인석, 문인석부터 왕릉 위는 하늘이 뚫려있어 햇볕이 직접 비추어 환한 반면 소나무숲으로 덮혀있는 왕릉 주변은 어두워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흥덕왕릉에서 천년을 지켜온 소나무숲은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신라의 숨결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여행 TIP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룡리 산 42

■ 멋진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곳 '경주 안압지(동궁과 월지)

경주 안압지(雁鴨池)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674년에 조성된 궁과 연못입니다. 안압지는 원래 임해전이라는 전각을 중심으로 지어진 궁의 연못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안압지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부터 불려진 이름으로 폐허가 된 연못에 오리와 기러기들이 날아들어 오리와 기러기의 연못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그러나 2011.7월 부터 경주 안압지의 이름이 '동궁(東宮)과 월지(月址)'로 바뀌었습니다.

안압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3만여점의 문화재가 출토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별도 안압지관을 건립해 따라 보관 전시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국립경주박물관에 들러 안압지에서 나온 유물도 보는 것도 좋습니다.

안압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3만여점의 문화재가 출토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별도 안압지관을 건립해 따라 보관 전시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다시오게되면 국립경주박물관에 들러 안압지에서 나온 유물도 보고 가야겠습니다.

비록 수양버들이 흐느적거리는 옛모습의 안압지는 사라지고 벽돌로 휘둘러 인공적인 냄새가 나는 곳이지만 안압지는 화려한 조명을 설치해 경주에서 밤이면 멋진 야경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안압지를 둘러보고 나서 부근에 위치한 첨성대를 보는 것도 멋진 야경을 즐길 수 있습니다. 다만 '21.12.3부터 내부공사 관계로 공사완료시까지 야간개장은 없으나 무료입장 중이니 참고하세요

☞ 여행 TIP

▷소재지 : 경북 경주시 원화로 102
▷입장료 :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료 : 무료
▷전화 : 054-750-8655

경주여행중 불교유적지와 경주의 조선시대 마을, 명품소나무숲이 있는 흥덕왕릉, 잘알려진 야경명소 등을 소개하였습니다. 참고하시어 좋은 여행 하시기 바랍니다.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이창룡 -

공감과 댓글은 더 좋은 글을 쓰게합니다

반응형

댓글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