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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진도여행 9] 삼별초의 애환이 담긴 남도석성

by 드래곤포토 2010.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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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석성은 고려 삼별초 배중손 장군이 여몽연합군과 격전을 벌이다 최후를 마친곳으로 전해져오며 둘레 610m, 높이는 2.8-4.1m, 폭은 2.5∼3m 가량의 석성으로 거의 원형상태를 보존하고 있다.

남도석성은 현재 남동마을을 감싸고 있는 평탄한 대지위에 돌로 축조된 성이다. 원래 고려 원종때 삼별초 군이 진도에 머물면서 해안방어를 위해 쌓은 것이라 하며 삼별초군이 제주도로 건너갈 때도 이곳에서 출발하였다고 전해온다.

조선 초기에는 왜구가 해안을 자주 침범하여 해안과 섬 지방에 성을 쌓고 수군을 파견하였다. 당시 이곳의 지명이 남도포였으며 만호가 책임자로 파견되었기 때문에 '남도포수군만호지성'이라 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남도포에 만호가 처음 생긴 것은 조선 세종20년(1438) 정월의 일이다. 이로 미루어 보면 현재 남아있는 성은 세종 20년 이후에 쌓은 것으로 보아야 한다.

둥그런 성벽과 동.서.남문이 거의 그대로 있으며, 서문 양옆에 밖으로 튀어나온 치가 남아있다. 성 안에는 민가가 수십 호 들어서 있고, 마을 사람들은 이 옛성문을 통해 출입한다.

진도관광안내도
DSC03207 마치 호수같은 동령개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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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3205 남도석성
DSC03214 쌍운교

남도석성 남문 앞으로 흘러가는 가느다란 개울(세운천) 위에는 쌍운교와 단운교 두 개의 운교(무지개다리)가 놓여있다. 두 개 모두 편마암질의 판석을 겹쳐 세워 만든 것으로 규모는 작지만 전국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양식이다.

DSC03215 쌍운교

쌍운교는 개울의 너비가 넓어 쌍무지개 형식으로 만든점이 단운교와 다르다. 단운교와 마찬가지로 평마암질의 다듬지 않은 돌과 강돌로 쌓아 만들었다. 길이 5.5m,폭 2.5m, 놓이 2.5m이다. 쌍운교는 주민들이 1930년 경에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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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3223 단운교

단운교는 옆에서 볼때 무지개 모양이다. 다리 위에는 흙을 돋우고 잔디를 심었다. 길이 4.5m, 너비 3.6m, 높이 2.7m로 작은 규모이다. 주변의 흔한 돌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였는데 다리의 아치 윗부분에는 편마암질의 돌을 판석 형태로 썻고, 아랫부분에는 약간 큰 강돌을 썼다. 특이하게 아치부분은 다듬지 않은 납작한 돌을 세로로 세워서 불규칙 하게 돌려 쌓았다. 단운교가 세워진 시기는 1870년 이후이나 정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DSC03221 성문을 보호하기위한 옹성
DSC03224 남문 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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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3227 진도개

성문을 들어서니 성문앞 바로앞에 있는 민가에 진도개들이 새끼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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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에 올라 성벽을 따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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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3234 동문 옹성

성은 끊어져 있고 아마도 옹성역활 하는 부분이 무너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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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을 계속 타기위해서는 마을로 들어서서 다시 올라타야 한다.

DSC03239 동문 안쪽
DSC03241 아까 걸어왔던 성벽(동문 옹벽)

성을 계속에서 잇지 않고 중간을 터서 옹벽을 만들고 문으로 이용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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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3259 복원된 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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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3281 마을 바깥쪽으로 동령개 해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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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3290 서문
DSC03295 남도석성 만호비

만호(萬戶)는 대부분이 무예에 능한 임직원이었는데 여기에는 여섯 분의 만호비가 모셔져 있다. 원래 만도석성 안에 마을 중간쯤 있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한다.

남도석성은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에 있으며 사적 제127호로 지정되어있다.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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