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전 하와이는 가난한 한국인에게는 기회와 꿈의 땅이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에는 121명의 첫 한국인 이민자들을 시작으로 눈물겨운 이민생활을 통해 독립자금도 마련하고 자식교육에 모든 것을 바친 우리나라 하와이 이민자들의 애환이 담겨있다.

DSC09683 한국이민사박물관 전경
DSC09700 하와이이민 모집광고

1903.8.6자로 각처에 내붙인 모집광고인 '고시'는 하와이에서 영문으로 작성되어 한국으로 보내진 것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하와이의 사탕수수와 파인애플농장의 저임금 노동자를 찾기위해 미국정부는 처음엔 중국인들을 이민자로 받아들이다가 중국인들이 많아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인들을 이민자로 받아들엿다. 그러다 점차 저임금 노동자를 찾아보다가 한국인들의 이민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DSC09698 1904년 대한제국에서 발행한 집조(당시 여권)
DSC09696 수민원 초대총재 민영환

당시 고종황제는 농장이민을 위한 기관으로 수민원(綏民院)을 설치해서 지금의 여권인 집조(執照)를 발급했으며,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내리교회 존스목사와 같은 선교사들을 통해 많은 수의 기독교 신자들을 포함 121명의 첫 이민신청자들이 생겨났다.

※ 박물관에는 유민원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수민원의 오타인 것 같아 박물관에 수정요청을 하였습니다.

DSC09705 당시 인천항 부두

1902.12.22 첫이민자 121명은 일본배 켄카이마루(玄海丸)호를 타고 제물포를 떠나 12.24 나가사키항에 도착하였으나 신체검사에서 19명이 탈락하여 102명만이 하와이로 가는 갤릭호를 탈 수 있었다. 1903.1.2 일본 나가사키를 출항한 갤릭호는 1.13일 아침 호놀룰루에 도착하였다.

DSC09717 총6회에 걸쳐 이민자를 수송했던 갤릭호 모형

처음 121명이 인천 제물포를 떠났으나 일본 나가사키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19명이 탈락, 102명만이 갤릭호를 타고 1903.1.13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보건당국의 검사결과 질병자 16명이 발견되어 탈락하고 결국 86명만이 상륙허가를 받았다.

DSC09708 갤릭호 승선자 물품

거주지 분포를 보면 제물포 67명, 부평 10명, 강화 9명, 서울 7명, 경기도 3명, 나머지가 6명으로 인천출신이 86명(84%)로 이민 모집 초기에는 인천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엇다. 내리교회 존스목사가 교인들에게 이민을 적극 권유했기 때문에 인천출신이 많았다.

DSC09720 사탕수수 농장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초기 이민자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의 중노동을 하면서 이민생활을 개척해 나갔다. 한일합방으로 돌아갈 나라조차 잃었던 이민자들은 주일이면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어려움을 견뎌냈다.

DSC09738 교회의 역활

교회는 한인공동체의 구심점이자 초기 이민자들의 안식처 역활을 했다. 1903년 호놀룰루에서 정기적인 예배가 시작되어 1905년 해외 최초의 한인교회가 에바농장에 세워졌다.

DSC09736 사진신부

혼기를 넘긴 노총각들의 결혼문제는 초기이민자들이 배우자를 구하기 어려워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사진만 보고 배우자를 선택하는 사진결혼을 시키게되었다.

1910-1924까지 중매쟁이를 통해 사진만 보고 700여명의 여자들이 하와이로 가게되었다. 생활이 어려웠던 이민자들은 새로 찍은 사진을 보낸 것이 아니라 과거 젊었을때 사진을 보내다 보니 사진나이와 실제나이가 많이 틀렸다 한다.

DSC09735c 배우자를 찾아 여러섬으로 흩어지기 직전에 찍은 사진(1913)

사진만 보고 결혼하다보니 그들의 평균 나이차이는 무려 15살이나 되었다. 아무튼 이들이 초기 한인사회를 형성하였고 개척자로서 적극적인 삶을 꾸려 나갔다.

DSC09739 당시 교실

눈물겨운 노력으로 하와이에 정착한 이민자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돈을 쪼개 독립자금으로 썼고 자식들의 교육에 모든 것을 바쳤다.

DSC09740 당시의 교과서

점차 노동조건이 좋아지자 열악한 하와이 농장을 떠나 도시로 이주해 식품점, 양복점, 세탁소 등 자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이민자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이라 한다.

DSC09749 의연금 증서

당시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가 세운 한인기독학원은 초등학교로 매년 8-90명의 학생이 배출되었고 점차 많은 교육기관이 생기자 한인기독학원을 매각한 15만 달러가 지금의 인하대하교 설립자금으로 활용되었다.

DSC09753 인하대학교를 설립한 배경설명

인하대학교는 인천과 하와이의 첫자를 따서 인하(仁荷)라는 교명이 만들어졌다. 인하대의 설립은 하와이 한인기독학원 부지매각대금 등으로 지어진 하와이 교포들의 정신적인 귀환이다.

DSC09764 2008.10.3 재외동포재단이 세운 기념비

한국이민사박물관은 미주 이민 100주년을 맞아 선조들의 해외활약상과 개척자적인 삶을 기리고 그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인천시민들과 재외 동포들이 함께 뜻을 모아 2008.6월 건립된 박물관이다.

DSC09768 박물관에서 보이는 월미산 전망대

지금은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코리안 드림을 일구기 위해 우리나라에 오듯이 100여년전 우리 선조들이 현지인들의 괄시를 받아가며 개척한 삶을 돌이켜 볼 수 있도록 건립한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월미공원안에 마련되어있다.

여행 TIP

소재지 :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1가 102-2 (문의 : 032-440-4710)
입장료 : 무료(개관기념으로 한시적)
관람시간 : 09:00-18:00 매주월요일, 1.1, 공휴일 다음날 휴관

다음은 월미산 전망대에 오릅니다.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Posted by 드래곤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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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pk 2010.04.28 2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관한지가 얼마되지 않은 모양이네요.^^
    조금 생소한 내용이긴 하지만 자세하게 소개해 주셔서
    하와이 이민사에 많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인하대학교가 하와이와 연관이 있었다는 내용도 새롭습니다.ㅎㅎ

  2. 하늘엔별 2010.04.28 2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처음 듣는 역사적인 사실이군요.
    월미공원에 이민사박물관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

  3. 윤기근 2010.04.29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블러그 운영자님의 활동 사진을 보고 있으니 ............ 우리나라에도 상당한 가치있는 문화재라든지
    볼거리가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잘 보 다녀갑니다.

  4. 김민경 2010.04.29 11: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천시민과 함께 하는 2010 인하가족 한마당 (축하공연: 브아걸)


    인하대학교 총동창회는 오는 5월5일(수)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인하대학교 야구장에서“인천시민과 함께하는 2010인하가족한마당”을 개최합니다.


     *공식행사(14:00~14:30)
     개회식 및 비전선포식

     *놀이마당(11:00~17:00)
     상설놀이체험
    페이스 페인팅, 캐리커쳐, 삐에로 풍선, 비누방울, 다트게임
     어린이 항공 우주 체험
    우주여행터널, 우주 무중력 체험, 낙하산 체험, 도전!달 착륙
     어린이 놀이터
    슬라이딩 놀이터 에어바운스

     *축하공연(14:30~16:30)
     인하대 동아리 축하공연
    응원단 아세스, 댄스동아리 FLEX, 창작 가요 동아리 꼬망스, 풍물동아리 풍물사랑
     특별출연
    인천의 노래 문보라, 미스터 코리아 강경원, 오창민, 김정진
     인기 연예인 축하공연
    박준형과 개그 패밀리, 브아걸

  5. 하수 2010.04.29 12: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덕분에 좋은 구경 합니다.

  6. KEN 2010.04.29 1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를 다시 볼 수 있는 사진이군요.
    숙연해지네요. (__)

  7. 드래곤포토 2010.05.17 17: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포스팅 내용중 유민원에 관한 질의에 대하여 이민사박물관의 답변입니다. 참고바랍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이민사박물관입니다.

    귀하께서 질문하신 綬民院은 한자로 된 기록 밖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시 綬는 "유"와 "수"음으로 모두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관이 유민원으로 불리웠는지 수민원으로 불리웠는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윤치호 일기 1902년 11월 29일자에 의하면 綬民院을 yu min won 으로 표기 하였으며

    이를 근거로 우리 박물관에서는 유민원 표기를 하였습니다.

    이는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북미주 한인의 역사(상) 편에서 유민원에 대한 근거로 윤치호 일기 및 Wayne Patterson 의 “The Korean Frontier in America: Immigration to Hawaii, 1896~1910"을 인용한 것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박물관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른 궁궁한 점은 박물관 032)440-5931로 연락 주시면

    친절히 답변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8. kassellee@hanmail.net 2011.09.01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품을 기증할려고 메일을 보넸읍니다 메일 보시고 회답주시면 감사 하겠읍니다

    독일에사는 교민 이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