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소개합니다. 대부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대해 이야기는 들어봤지만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잘모르실 겁니다. 우선 아우슈비츠부터 소개합니다.

[아우슈비츠(Auschwitz) 강제수용소]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폴란드의 오슈비엥침(Oswiecim: 옛이름 아우슈비츠)에 있는 옛수용소입니다.

이 곳은 유럽의 중심지에 위치하여 유럽 전역과 기차를 연결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이고 폴란드의 외진 곳이라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아 보안성도 갖춰져 있어 선택된 곳이라 합니다.

100_4137 수용소 정문

제가 간날은 이스라엘 학생들이 단체로 관람을 왔습니다. 학생들 대부분은 이스라엘 국기를 몸을 두루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조상이 학대받은 역사의 현장을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가며 그들은 조용히 수용소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100_4138 정문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이스라엘 학생

두명의 이스라엘 여학생이 정문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여학생들은 얼굴을 보이지 않고 이스라엘 국기를 두른 뒷모습을 보이며 정문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이들이 기념하는 것은 나 개인이 온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아우슈비츠 현장에 왔다는 의미일까요 ?

100_4141 "ARBEIT MACHT FREI"

철문위에 새겨진 문구는 "ARBEIT MACHT FREI"로 "일하면 자유로워 진다"는 뜻이라 합니다. 강제수용된 유태인들에게는 강제노동만이 그들의 휴식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00_4146 수용소 건물

수용소 주변에 큰 포풀러 나무가 질서 정연하게 심어져 있습니다. 이 나무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현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100_4151P 수용소 풍경

수용소는 이중철조망이 쳐져있고 옛모습 그대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적막이 흐를정도로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수용소 건물 한동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당시 모습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100_4152 과거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100_4155P 집단 가스실 모형

위 사진의 첫번째 사진은 지하 가스실이 있는 건물 전체모형이며, 아래 좌측사진은 유태인들이 기차에서 내리면 지하 탈의실에서 옷을 벗게한 후 오른쪽 지하 가스실에서 집단 사살하는 모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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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_4164P 유태인들의 안경
100_4169P 주인잃은 물품들

게르만 민족은 장애자가 없다고 하면서 유태인 장애자들을 모두 모아 처형했다고 합니다. 가방주인의 주소와 이름들이 적혀있는 주인잃은 가방들이 수북히 쌓여있습니다.

100_4177P 주인잃은 물품들

주인을 잃은 신발, 동전, 가방, 옷솔 등의 물품들이 가득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100_4178 수용소를 관람하고 있는 이스라엘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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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_4184P 수용소 내부시설

당시 수용소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는데 벽면한쪽에는 당시 수용자들의 사진이 붙어 있으며 사용했던 모포, 그리고 수용소의 공동 화장실과 세면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100_4188 여기서도 잠을 잤다고 한다.
100_4189 모포가 없을땐 짚을 깔고 잤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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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_4194 통곡의 벽(사형장)

오른쪽 옆건물에서 간이재판을 하고나서 사진에서 보는 벽에 세워놓고 총살했다고 합니다. 사형장을 통곡의 벽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100_4201 경비용 망루
100_4211P 지하감옥

지하감옥의 독방은 기어들어가게 되어있으며 혼자 서있을 정도의 공간만 있습니다. 관광객이 관람 할 수 있도록 현재는 벽면을 터놓아 내부를 볼 수 있도록 되어있습니다.

100_4213
100_4218
100_4226 교수대

여기 교수대는 수용되어 있던 유태인들이 여기서 교수되었으며 전쟁이 끝난후 여기 수용소장이 도망가다 잡혀 이 교수대에서 처형당했다고 합니다.

100_4225 가스실
100_4236P 가스실

유태인들을 안에 가두고 우측사진 가스실 천장에 뚫려있는 구멍으로 가스탄을 위에서 넣었다고 합니다. 유태인들이 질식하여 죽으면 바로 옆에 있는 소각장에서 시신을 화장했다고 합니다.

100_4240P 고압선이 흐르는 철조망

수용소 주변은 고압선이 흐르는 2중 철조망으로 탈주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압의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일부러 달라붙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전체 28동의 건물이 있는데 여기에 수용되었던 연인원 약150만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대학살의 현장입니다.

[비르케나우 (제2 아우슈비츠) 수용소)]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아우슈비츠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면적이 54만평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20배 규모로 제2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라 불리웁니다.

이 곳의 입구는 '죽음의 문'이라고 부르며 열차 노선이 끝나는 부분에 현재 '국제 위령비'가 있습니다. '쉰들러 리스트'의 영화 후반은 비르케나우를 무대로 했다고 합니다.

100_4243 비르케나우 수용소
100_4248 옆에서 본 수용소 정문(죽음의 문)

수용소 정문은 기차 철로위에 지어졌으며 유럽각지에서 끌려온 유태인들이 끌려 들어간 문이 웬지 어울리지 않게 작은 것 같습니다.

100_4249 비르케나우 수용소 정문(죽음의 문)
100_4250 수용소 구내로 뻗은 철도 인입선
100_4264P 비르케나우 수용소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1979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록되었다고 합니다. 이것도 인류의 역사이기에...

[히틀러가 유태인을 학살한 배경]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수용소를 관람하면서 히틀러가 유태인 학살을 하게된 배경을 들었는데 그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히틀러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유태인하고 재혼했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자라면서 유태인 새아버지가 어머니한테 비인격적인 대우를 하는 것을 보고 자랐으며, 히틀러가 18세때에 어머니는 유태인아버지에 대한 스트레스로 유방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후 히틀러는 집을 나와 홀로 돈을 벌면서 미술학도가 되고자 미술대학에 지원하였는데, 마지막 면접에서 오스트리아 면접관 4명, 유태인 면접관 2명중 오스트리아 면접관들은 합격점을 주었으나 유태인 면접관은 실력이 다소 떨어져도 부를 갖춘 학생이 필요하다고 히틀러를 불합격을 시켰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1년 동안 돈을 벌어 다시 그 미술대학을 지원 했으나 마찬가지로 유태인 면접관은 히틀러를 불합격 시켰습니다.

히틀러는 고아라는 이유로 미술대학을 진학하지 못하자 오스트리아 떠나 독일로 갔습니다. 히틀러는 독일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군대에 지원하여 군생활에서는 훈장을 받는 등 성공적인 군생활을 하게됩니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에서는 유태인 때문에 인정을 받지 못했으나 독일에서는 성공적인 군생활을 하게되면서 그는 오스트리아 국적을 포기하고 독일 국적을 취득하여 점차 성공하자 정치적인 야망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유태인들이 오스트리아에서 부를 갖추고 있는데 그 이유는 주로 악기판매를 판매하여 현찰보유가 많았고 대부분 고리대금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같은 유태인에게는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나 오스트리아인 들한테는 일정기간내 갚지 못할 정도의 기간만 빌려주는 등 고이율로 많은 돈을 축적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오스트리아인들은 고리대금으로 인한 피해가 많아 유태인 상인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며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계획에 이러한 이유로 오스트리아 인들이 많이 동참했다고 합니다.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이 우수한 민족임을 내세우기 위해 장애자를 우선 학살하였고, 이어서 유태인거주 동네에 독일인이 공격한다고 소문을 내고 피난장소를 제공한다는 구실로 유태인들을 아우슈비츠로 모이게 하였다고합니다.

폴란드 아유슈비츠 지도

다음은 체코 프라하로 향합니다.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Posted by 드래곤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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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위네모 2011.02.16 09: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차 대전때 그 끔찍한 장소를 이렇게 보다니... 기분 묘하네요~
    댓글 보고 놀러왔다가글 잘 보고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3. skypark박상순 2011.02.16 10: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의 현장이군요...
    덕분에, 정말 귀한사진 잘 보았습니다.^^

  4. 세리수 2011.02.16 10: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용소에 안들어갈래~~

  5. 화사함 2011.02.16 11: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슷한 역사를 겪었던 우리이기에
    마음이 아파오네요...
    이스라엘학생들의국기를 내걸고 다니는
    모습이 너무 인상깊습니다...
    저희도 저런식으로 하면 어떨까요..

  6. 송쓰22 2011.02.16 12: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이곳 꼭 가보고 싶은 그런 곳이네요.
    프라하는 저는 개인적으로 그닥 다른 곳보다는 좋지는 않았어요.ㅋ

  7. 지후니74 2011.02.16 12: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짜 반복되어서는 안될 역사의 현장이네요.~~~
    이 곳에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원혼들은 편히 쉬고 있을까요?
    세계 그 어느 여행지보다 뜻깊은 곳입니다.

  8. 스마일맨 민석 2011.02.16 12: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아픈 역사의 현장이네요. ㅠㅠ

  9. 함차가족 2011.02.16 14: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할 비극을 역사로 남겨 되새기는군요.
    오래전 우리도 그랬지만 거울삼아 맘을 다잡아야겠어요..저부터

  10. 티비의 세상구경 2011.02.16 14: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는 이런 끔찍한 역사는 반복이 되지
    않아야할텐데요....

    히틀러가 유태인을 싫어한 이유를
    오늘 처음 제대로 알게된것 같네요 ^^;

  11. 보기다 2011.02.16 14: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히틀러의 잔혹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비극적인 장소네요.
    전쟁의 불씨를 안고 있는 우리도 조심해야 할 역사적 교훈일 듯 합니다.

  12. 꼬마낙타 2011.02.16 17: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쟁..
    없어져야 합니다. !!
    반드시..

  13. 화들짝 2011.02.16 17: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잔인한 역사의 현장이지만 포플러 나무가 길게 늘어선 모습을 보니 평화스럽게만 느껴지는군요.

  14. merongrong 2011.02.16 20: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도 비슷한 역사가 있지만
    저렇게 처절한 모습을 여과없이 만들어놓은 관람장은 없는거 같아요

    유태인의 학살 다큐멘터리를 보면
    저도 일본인들이 생각나서

    화가 날때도 있어요

  15. hungryalice 2011.02.17 02: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리에서 앵발리드 군사 박물관에서 봤던 사진과 그림을 보면서도 많이 마음이 참 이상햇는데
    이 포슷힝을 보니깐 그 때 그 기분이 생각나네요.

    정말. 인간은 참 무서운거 같아요.

  16. 빨간來福 2011.02.17 08:4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슬픈 역사의 현장이군요.

  17. 악의축 2011.02.17 13: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스라엘 학생들이 인상적이군요.
    저희도 1인 1태극기 시스템 도입이 시급합니다.

  18. 장화신은 메이나 2011.02.17 14: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꼭 가보고 싶은 장소 중 한 곳인데요.
    이렇게 사진으로 봐도 가슴이 선득합니다.
    이스라엘 국기를 두르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도 인상적이구요.
    저렇게 조용하고 평화로워보이는 곳에서 일어난 끔찍한 역사에 할 말이 없군요.
    좋은 글과 사진 잘 보고 갑니다^^

  19. Cericole 2011.02.18 10: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살았던 곳이라 다시봐도 강하게 다가오네요. 유대인 학살을 넘어 폴란드 사람들도 꽤나 당했었죠. 모국과 예전의 체류국에 비슷한 역사가 있다는게 신기해요ㅎ

    근데 이게 어찌보면 말이 안되는게, 아무리 유대인들이 저들끼리 놀았어도 이스라엘에서 흩어져 오래떠도는 동안 게르만족과도 상당히 섞였을것이라는 점이죠.. 말이 인종청소지, 그냥 금융권을 장악하고 있는 무리 박살시키기 같아보이기도 해요. 좋게보면 머리가 좋은게 유태인들이니까요ㅋ..

  20. 청솔객 2011.02.18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는 이 코스를 비켜 갔습니다. 너무 우울할것 같아서.
    드래곤님 덕분에 갔던것 보다 자세히 봅니다.^^*

  21. 이리리베 2013.03.19 0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르케나우 갔다왓어요! 배낭여행인데 아우슈비츠만 보고 가냐고 현지인 가이드한테 핀잔들어서 기분상해서 갓는데
    정말 전 아우슈비츠보다 더 큰 충격을 받고 왔어요 ...
    비르케나우 진짜 저는 아우슈비츠보다 더 추천하고 싶네요. 그냥 역사 그 자체 현장에 놓인 느낌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