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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충북 보은 '선병국 가옥'

by 드래곤포토 2011.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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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보은군에 있는 선병국 가옥은 고려 때부터 명문가였던 보성 선씨의 종갓집으로 고려말 여진정벌과 왜구 소탕, 조선시대 임진왜란, 병자호란때 공을 세웠던 집안이라 합니다.

선병국 가옥은 1919년부터 1921년까지 3년에 걸쳐 지은 99칸 집입니다. 참고적으로 칸이란 방의 수를 나타내는 단위는 아니고 기둥과 기둥사이를 세는 단위라 합니다.

원래 선씨일가는 고려시대부터 전남 고흥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당시 가문을 이끌던 선정훈(선병국씨 선친)가 명당자리를 찾아 전국을 뒤진 끝에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명당인 이곳에 터를 잡고 당대의 제일가는 대목들을 불러들여 융숭히 대접을 하며 집을 지었다고 합니다.

일제시대때 지어진 이 집은 전통가옥의 형태를 갖추면서도 시대 변화에 따른 건축기법의 변모를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1984년 국가 지정 주요문화재로 지정당시에 손병국씨가 살고 있어 손병국가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웁니다.

IMG_4447 선병국 가옥 배치도

원래 정문은 '솟을대문'으로 주차장이 후문(사주문)쪽에 있어 정문부터 들어가기위해서는 사주문에서 담을 따라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야 합니다.

솟을대문 앞쪽에 시혜비와 효열각이 있습니다.

IMG_4450 철로 만들어져있는 시혜비

원래 전남 고흥에 살던 선병국씨 할아버지(선영홍)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1922년 4개면 소작농민들이 세운 시혜비로 전남고흥군에 있었으나 도로확장사업으로 인해 선씨 후손들이 살고 있는 이 곳 효열각 옆으로 이전했다고 합니다.

IMG_4457P 효열각

선씨가문에 효자와 열녀가 있었나 봅니다. 우리세대엔 점차 사라져 가는 단어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IMG_4448 정문(솟을대문)

좌우 행랑채보다 기둥을 훨씬 높이어 우뚝 솟게 지은 대문을 솟을대문이라 합니다.

이집은 크게 사랑채와 안채, 사당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IMG_4460 사랑채

남쪽을 향해있는 정문(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공터 앞에 보이는 건물이 사랑채입니다.

IMG_4462 옛 화장실

사랑채 담장 우측에는 옛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데 사용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만 황색 스레트 지붕이라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

건물에 근대 한국의 모습도 반영한 것이라면 할말은 없습니다만...

IMG_4464 사랑채

사랑채는 앞,뒤 모두 툇마루를 설치하여 더욱 넓은 공간을 활용하게 하였습니다. 가운데의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양 옆에 큰사랑방을 비롯한 골방, 약방, 마루 들을 시설하였습니다.

사랑채는 대문과 같은 축의 남향으로 집채가 H모양으로 생겼고 겹집으로 집의 폭도 넓습니다.

IMG_4501P

위선최락(爲善最樂)은 보성 선씨의 가훈으로 선을 행하는것이 최고의 낙이라는 뜻입니다. 대들보를 나무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휘어진 나무를 다루는 목수는 그리 흔치 않다고 합니다.

IMG_4502 사랑채 우측모습

사랑채 우측 좁은 마루에는 칸막이로 막혀있습니다.

IMG_4468 사랑채 모습

IMG_4506P 사랑채 쪽문(밖에서 본 모습)

사랑채 쪽문은 안에서 밀고 나가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바깥쪽에서 손님들이 모르고 들어온다든가 하는것을 가능한 막기위함이라합니다.

쪽문 아래를 보면 문턱이 높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98년 수해때 여기 담장이 무너져 남아있는 쪽문에 담장을 새로 쌓아 현재의 모습처럼 되었다 합니다.

쪽문의 위치를 살린다고 그냥 놔둔것 같은데 제대로 된 복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IMG_4480 사랑채 우측담장

IMG_4507 사당

사당은 조상의 위패를 모신곳으로 보통 문은 세개인데 오른쪽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나온다고 합니다. 가운데는 신이 드나드는 문이라 합니다.

IMG_4481 장독대

IMG_4510 안채입구

IMG_4487 안채

안채는 사랑채 동쪽에 서향을 자리 잡았습니다. 집모양은 사랑채와 동일한 규모의 H자모양이며 기둥, 처마 등도 사랑채와 같습니다. 가운데 네 칸짜리 대청을 끼고 왼쪽이 안방, 오른쪽이 건너방입니다.

IMG_4489 안채

여기도 전통한옥과는 달리 일제시대에 지은 건물이라 그런지 하단부를 빨간벽돌을 사용했습니다.

조선시대 때는 신분에 따라 칸수와 기둥높이 등으로 건물의 규모를 규제했는데 일제시대들어 신분사회가 와해되면서 경제력만 있으면 크고 좋은집을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병국 가옥에서 그러한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있다 합니다.

IMG_4516 안채뒤 장독대

안채 뒤의 장독대에도 따로 담이 쳐져있고 빗장까지 쳐져 있습니다.

IMG_4518 안채 뒷문

IMG_4519 안채 뒷모습

IMG_4513P 곳간채

곳간채는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ㄷ자 모양으로 크게 둘러서 안마당을 만들었습니다. 곳간채는 현재 고시원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원래 가옥 남쪽에 관선정을 1926년에 창건하여 서당을 운영했었으나 1944년 일제의 탄압으로 철거되었다고 합니다.

인재를 모아 가르치던 전통은 고스란히 이어져 곳간채를 개조한 고시원이 지금껏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 집을 거쳐간 고시생이 1000여명에 이르고 사법고시 합격자만 50명을 넘는다고 합니다.

IMG_4491 중문

IMG_4525 사주문(뒷문)

연화부수형이라는 명당인데도 1998년 8월 홍수로 담이 다무너져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원래 선병국 가옥앞을 흐르는 하천(삼가천)이 동남쪽, 서남쪽 두갈래였는데 동남쪽을 막아서 농토로 사용하는 바람에 홍수때 그 물이 넘쳐나 선병국 가옥이 침수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이후 하천(삼가천)을 두갈래인 원래 모습대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뒷문 앞에 언덕이 생긴것은 98년 수해복구시 흙을 걷어내 쌓아 모아 놓은 것이 지금의 언덕을 이룬것이라 합니다.

IMG_4530 삼가천

조선시대에는 하인들이 있어 주인이외 하인들이 집을 관리하였으나 일제시대부터는 신분사회가 파괴되면서 큰집을 주인들이 관리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대부분 관리되는 문화재는 사람이 살지 않고 텅비어 놓는 곳이 많은데 현재 넓은 선병국 가옥은 전통찻집과 고시원으로도 활용하고 있어 그만큼 사람들의 손길이 닿으면서 오히려 관리가 잘되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여행 TIP

소재지 :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 154
주차장쪽에서 만나는 가옥문은 후문(사주문)이므로 우측 담을따라 돌아 정문(솟을대문)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선병국 가옥 위치도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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