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익산에 있는 미륵사지는 사적 제 150호로 백제 30대 무왕이 세운 사찰로, 익산의 주산인 미륵산(과거에는 용화산이라함)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삼국유사' 무왕조에는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를 가던중 용화산 밑의 큰 연못에서 미륵 삼존이 출현하자 사찰을 짓고 싶다는 부인의 청을 받아들여 연못을 메운후 법당과 탑, 회랑 등을 각각 세곳에 세우고 '미륵사'라 하였다는 미륵사지 창건설화가 전합니다.
IMG_3379 미륵사지
1980년이후 시작된 미륵사지 발굴조사에서 2만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1993년 미륵산 사자암 발굴조사에서는 백제 및 통일 신라의 기와와 토기등이 출토되어 '삼국유사' 기록의 신빙성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의 문헌기록과 약 17년간에 걸친 발굴조사를 종합해 보면, 미륵사는 백제무왕이 왕권을 강화하고 국력을 신장할 목적으로 조성한 동양최대 최고의 국립사찰로서, 조선후기 17세기 무렵에는 폐사되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먼저 미륵사지 동쪽 석탑쪽으로 가보았습니다. 가는길은 테크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당간지주란 사찰에서 행사나 의식이 있을때 당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인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서 당간 양쪽에 설치하는 돌기둥입니다.
미륵사지 경내에는 석탑의 남쪽에 동서로 약 90m간격을 두고 규모나 형태, 조성수법이 매우 비슷한 당간지주 2기가 세워져 있습니다.
장식이 적으며 단정한 형태를 보이는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974년 동원 탑지를 조사하여 기단의 규모와 형태로 보아 서탑과 같은 백제시대의 석탑이 있었음을 알게되어 그 탑자리에 1991년부터 복원하여 1992년에 완공하였다고 합니다.
석탑은 9층으로 높이는 27.8M이며 탑의 내부는 1층 탑신에 +자형 통로가 있습니다. 탑 복원에는 익산 황등에서 캐낸 화강암 2천여개로 무게는 2,700여 톤이며 백제시대 석탑 기단석과 탑신석 35개가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IMG_3393 황량한 미륵사지터(금당지)
IMG_3397 석등 하대석
미륵사지 석등하대석은 중원 목탑지와 동원 석탑지 북편에 2기가 있습니다. 미륵사지 석등하대석은 우리나라 석등 중 제작시기가 가장 빠른 것으로 석등의 양식을 전해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합니다.
금당지의 삼원병립시거 가람배치는 미륵불의 3회 설법을 통해 사바세계를 구원한다는 미륵신앙을 현실세계에서 하려는 노력의 산물로써, 당시 백제인의 세계관과 창조성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닙니다.
정면5칸, 측면 4칸 규모의 미륵사지 금당은 초반석 위에 1m높이의 주춧돌을 올려 지음으로써 의도적으로 지면과 금당 바닥사이에 빈 공간을 만든 독특한 건축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미륵사지 역시 목탑양식을 지닌 석탑으로써 우리나라 석탑의 시원양식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백제인의 예술성과 창조성, 실용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강당지는 여러사람이 모여 불경을 읽거나 불교의식을 행하던 곳이라 합니다.
이 곳의 출토유물을 보면 여기에 목탑이 세워져 있었다고 합니다.
남북으로 나란히자리하고 있는 2기의 가마는 형태가 거의 유실되었으나 내부에서 고려시대 기와와 연우4년으로 기록된 기와가 출토회어 고려말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미륵사지에는 기와를 자체공급하기 위한 생산시설인 기와가마가 세곳이 있다고 합니다. 미륵사지 동편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대의 가마가 일정거리를 두고 각각 2개씩 있습니다.
조선시대 기와가마는 미륵사지 동쪽으로 흐르는 수로의 서쪽 경사면에 30cm 정도 벽을 사이에 두고 동서방향으로 나란히 위치합니다.
이 가마에서 구워진 기와는 사역북편 조선시대 건물지에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IMG_3413 해체 복원중인 미륵사지 석탑 가건물
국보제 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은 동북쪽 부분이 6층까지 제 모습을 갖추고 있을 뿐 무너진 부분을 1915년 일제시대때 시멘트로 보수하였습니다. 2001년까지 6층이 남아있었으며 높이는 14.24m였습니다.
백제 무왕(A.D 600~641년)으로 추정되며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하는 과정의 구조를 보여주는 석탑입니다. 이탑은 한국 석탑중 가장 큰 석탑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석탑입니다.
동쪽에 이와 같은 석탑이 또 하나 있었으며 두 석탑사이에는 목탑이 있어 미륵사에는 원래 3개의 탑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탑은 붕괴위험이 있어 2001년 부터 지금까지 해체 보수정비 중에 있습니다.
IMG_3443 석탑에 사용된 석재들
IMG_3445 미륵사지 석탑 터
2009년 1월14일, 1층 심수석 상면의 사리공에서 금제사리봉영기를 비롯한 사리장엄이 발견됨으로써 미륵사 창건사실의 진정성을 한층 높여주게 되었습니다.
석탑의 현존 높이는 14m로 탑신의 1층 네면에는 문을 만들어 내부로 들어갈 수 있고 사방이 통하게 하였으며, 내부의 중앙에는 목탑의 찰주와 같은 사방 99cm의 거대한 사각형 심주석을 세웠습니다.
미륵사지석탑은 백제인의 독창성과 실용성, 7세기 당시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실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IMG_3457 미륵사지 석탑 복원 가건물
IMG_3464P 미륵사지 출토 석조물
이곳에 전시된 석조물은 1980년 부터 1996년까지 17년간 미륵사지 발굴조사에서 수습된 백제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의 것으로 전시된 석조물은 22류 60여점으로 동원9층석탑 부재, 석등부재, 당간부재, 건물기단석 , 맷돌, 다양한 형태의 건물 초석등입니다.
동원9층석탑의 돌에는 홈을 파서 쇠걸이를 걸어 돌과 돌사이를 연결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미륵사지입구에 있는 유물전시관에는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몇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미륵사지터를 보면 미륵사의 규모를 짐작케 합니다. 미륵사의 복원이 빨리되어 우리 옛조상들의 얼을 되살렸으면 합니다.
여행 TIP
소재지 :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기양리 104-1)
전화 : 063-290-6799(미륵사지유물전시관)
입장료 : 무료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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