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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영월여행] 단종의 마지막 거처 '관풍헌'

by 드래곤포토 2012.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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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의 마지막 거처 '영월 관풍헌'

관풍헌(觀風軒)은 영월의 객사로 조선 태조 7년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단종께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청령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홍수를 피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생활을 하시다가 세조3년(1457) 10월 24일 세조가 내린 사약을 마시고 승하하신 곳입니다.

또한 이곳은 조선말엽 방랑시인 김삿갓이 이곳에서 취뤄진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였으나 시제에서 지탄한 선천부사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임을 알고난 후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여 삿갓을 쓰고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IMG_4521 관풍헌 정문(보덕사 포교당 정문)

관풍헌 정문은 보덕사 포교당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습니다. 지금은 보덕사 포교당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덕사는 장릉 동쪽 영월읍 영흥리에 위치한 장릉의 원찰이고 단종의 명복을 빌기위해 세운 사찰입니다.

지금은 보수중으로 제가 간날에도 관풍헌을 보수중에 있었습니다.

IMG_4523

정문을 들어서니 공사를 위한 카페트가 깔려있고 가운데 약사전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요사체, 오른쪽에 관풍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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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4525 관풍헌

지금은 아무일 없었다는 듯 조용하지만 이 곳 앞마당에서 그해 10월24일 금부도사 왕방연이 가지고 온 사약을 마시고 단종이 17년 인생을 마감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IMG_4527 요사체, 극락전, 관풍헌

지금은 보덕사 포교당이라 불교식 이름이 지어져있으나 원래 이름은 각 망경루, 내성관, 관풍루였습니다.

IMG_4529 매죽루(자규루)

관풍헌 앞마당에서 보면 매죽루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바로 이곳이 자규루입니다. 누각 북쪽엔 매죽루라는 현판이 걸려있지만 누각 남쪽엔 자규루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IMG_4535

자규루(子規樓)는 세종10년(1428) 영월군수 신권근이 창건하여 매죽루(梅竹樓)라 하였습니다. 후에 단종이 이곳 객사에 거처하였는데 소쩍새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자신의 처지를 견주어 이 누각에 올라 자신의 고뇌를 자규사(子規詞) 및 자규시(子規詩)로 읆은 것이 계기가 되어 누각의 이름이 자규루로 바뀌었다고 전해집니다.

참고로 자규는 우리말로 소쩍새를 의미하는데 짝짓기를 할때에는 밤새도록 울어대는 새라 합니다. 자규루는 선조 38년(1605) 큰 홍수로 인하여 이 누각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민가가 들어설 정도로 폐허가 되었으나 정조 15년(1791) 강원도 관찰사 윤사국이 그 터를 찾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IMG_4536 자규루

단종의 ‘자규시’를 소개합니다.

自寃禽出帝宮 孤身隻影碧山中(일자원금출자궁 고신척영벽산중)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에서 나온 뒤로
외로운 몸, 짝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 속을 헤매네

假眠夜夜眠無假 窮恨年年恨不窮(가면야야면무가 궁한년년한불궁)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聲斷曉岑殘月白 血淚春谷落化紅(성단효잠잔월백 혈류츈곡낙화홍)
울음소리 끊어진 새벽산에 달빛만 희고
피를 뿌린 듯한 봄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天聾尙未聞哀訴 何奈愁人耳獨聽(천통상미문애소 하내수인이독청)
하늘은 귀먹어 애달픈 하소연 듣지못하는데
어쩌다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밝는고 !

단종의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는 애통의 시입니다.

IMG_4537 밖에서 본 관풍헌

관아였던 관풍헌 건물은 지금은 보덕사의 포교당이 되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조선 객사였던 관풍헌이 어떤이유에서 보덕사 포교당으로 활용되는지 궁금합니다

단종의 마지막 거처였던 관풍헌은 청령포, 장릉과 함께 영월의 귀중한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보존이 제대로 안되어 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습니다.

여행 TIP

소재지 : 강원도 영월읍 영흥리 986-1

관풍헌 위치도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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