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개방된 조선왕실의 문화, '운현궁'
서울 종로에 있는 운현궁은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이 등극하기 전에 살았던 사저로 생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집입니다. 흥선대원군은 이곳을 무대로 10여년간 집정하면서 어린 아들을 대신해서 정치를 했던 곳으로 구한말 일제시대를 거 치면서 궁의 일부가 매각되어 옛모습의 일부가 없어진 우리 역사의 아픔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운현궁은 시 소유문화재(사적 제257호)로 그동안 700원의 관람료를 내야했으나 서울시에서 2014.3.20(목) 부터 무료 로 개방키로 결정하였습니다. 유료개방의 마지막날(3.19)에 마침 인사동에서 점심모임이 있어 운현궁을 찾았습니다.
운현궁의 일부가 일제시대이후 매각이 되어 현재 덕성여대 종로캠퍼스 정문이 원래의 운현궁 정문이었 다고 합니다.
DSC08644P 유료개방 마지막날의 매표소와 입장티켓
3.20일부터는 무료입장이기때문에 이안내판도 이제는 관람안내표시로 바뀔것 같습니다. 입장티켓도 기념으로 잘 보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운현궁에 들어서면 운동장마냥 휑하니 넓은 마당을 만나게 되고 나무숲에 가린 기와집이 길게이어져 보입니다.
운현궁은 조선 26대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1820~1898) 이하응의 저택으로 고종이 탄생하고 즉 위하기전 12세 까지 자란곳입니다. 고종이 즉위한 이후 집정을 맡은 흥선대원군이 정치를 하는 곳으로 변모하였고 임금이 계신 궁과도 직통으로 연결되 어있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10여년간의 집정기간 동안 세도정치하에서의 폐단을 제거하고 인사, 재정 등에 대폭적인 개혁을 단행 하였으며 경복궁을 증건하기도 하였습니다. 1882년 일어난 임오군란때에는 청군에게 납치당하여 청나라에 갔다가 1885년 귀국한적도 있습니다.
현재는 궁의 일부가 덕성여자대학원으로 사용되고 있고 개인에게 불하되어 그 규모가 축소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과 정에서 대원군이 즐겨 사용하던 아재당은 헐려나가고 사랑채인 노안당과 안채인 노락당, 별채인 이로당 등이 남아있 습니다. 이궁은 조선말기 대표적인 건물이며 정원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정문 우측에 위치한 수직사(守直舍)는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담당했던 사람들이 거처하던 곳입니다 . 당시의 운현궁은 상당히 넓었을 뿐만 아니라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면서 흥선대원군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 궁에서 파견된 경관들과 관리하는 인원이 많았다고 합니다.
DSC08652 노안당
노안당은 정면 6칸, 측면3칸으로 운현궁에서 사랑채로 쓰였으며 대원군의 일상거처였습니다. 대원군 이 여기서 주요 국가정책을 논의했던 곳입니다.
노안당이라는 현판은 노자(老者)를 안지(安之)하며에서 딴 것으로 아들이 임금이 된 덕택으로 좋은 집에서 편안하게 노년을 살게 되어 스스로를 흡족하다는 뜻으로 흥선대원군이 추사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든 것입니다.
말년에는 정권에서의 퇴진과 청나라에 납치되는 등 이 곳에서 79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현재 노안당에 게시된 편액은 모각되어 게시된 편액이며 원편액은 서울역사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노안당은 전형적인 우리나라 한식 기와집이지만 처마끝에 각목을 길게 대어 차양을 단 수법은 오늘날 이곳에만 남아있는 특징입니다.
노안당에는 흥선대원군이 난을 치는 모습, 흥선대원군의 아들을 왕으로 정하는 교서를 받는 의식(奉嗣 式: 봉사식)으로 영의정과 도승지가 참여한 가운데 치러지는 모습을 재현해 놓았습니다. 우측에 앉아있는 사람이 고 종, 좌측이 흥선대원군, 앞쪽이 도승지,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영의정입니다.
노안당의 서행각은 흥선대원군의 시중을 들던사람들의 숙소입니다.
노락당(老樂堂)은 노안당 북쪽에 있는 건물로 운현궁에서 가장크고 중심이 되는 건물로 정면 10칸, 측 면 3칸 규모입니다. 고종3년(1866) 삼간택이 끝난후 명성황후가 왕비수업을 받던 곳이며, 고종과 명성황후의 결혼식 등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때 주로 사용된 곳입니다.
노락당은 초익공 양식의 사대부가 건축미를 느낄 수 있으며, 아름다운 창살문양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지붕의 용 마루를 받치고 있는 중도리에는 용문양이 그려져 있어 건물이 권위와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락당 내부에는 명성왕후가 시어머니인 고종의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방문한 모습과 조선 25대왕 철종비와 26대왕 고종의 양어머니인 조대비가 노안당과 노락당의 낙성식에 참가하여 차를 마시며 담소 하는 모습을 재현해 놓았으며, 고종이 왕위에 오른 뒤 상궁과 나인들이 운현궁에 배치되어 살림을 도우는 부엌의 모 습도 재현해 놓았습니다.
DSC08699 이로당
1866년 노락당에서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치러진 이후 노락당을 안채로 사용하기 어려워지게되어 고종6년(1869)에 새로운 안채로 이로당을 지었습니다.
이로당(二老堂)은 정면8칸, 측면 7칸으로 바깥 남자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게 미음(ㅁ)자 모양으로 된 건물로 가운 데에 정원이 있습니다.
노락당과 더불어 안채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어 여자들만 살 수 있게 별도의 공간을 형성 하고 있는 철저한 금남지역이라 할 수 있으며 이로당의 안주인은 운현궁 전체 안살림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습니다.
이로당 안쪽을 들여다 보니 미음(ㅁ)자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내부는 들어갈 수 없어 안쪽의 모습을 찍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로당 동행각을 지나면 이로당 동쪽에는 우물이 있고 담벽을 이용하여 엣날에는 창 고로 사용했을 것 같은 곳이 있습니다.
이로당이 여자들만의 공간이라 그런지 이로당 앞에 수조가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건너편에 보이는 건 물이 일제시대인 1912년 운현궁의 일부를 헐고 지은 양식건물로 손님을 맞는 곳으로 사용하다가 해방이후 덕성여대에서 구입하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유물전시관은 운형궁과 대원군 관련 유물전시를 통해 역사속의 운현궁이 지녔던 가치와 한국 근대사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구성한 전시연출공간입니다.
18개로 나뉘어진 각각의 전시공간에는 각종유물전시는 물론 모형, 영상, 판넬 등의 전시매체를 활용, 관람객들이 복원된 운현궁의 모습과 연혁, 그리고 대원군가의 연보, 유품들으 통해 운현궁과 대원군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장이 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위 그림을 보시면 각각 별개의 건물이지만 노안당부터 이로당까지 3개 건물이 쭉이어져 있습니다.
운현궁을 둘러보면서 조선 한옥의 진수를 보여주는 건물임을 느꼈습니다만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운현궁의 완전한 모습이 아니어서 아쉬움이 남습니다. 주변에 있는 일본영사관, 현대모델하우스, 덕성여대의 땅들이 모두 운현궁에 속하는 땅이었다고 합니다.
운현궁이 무료로 개방되어 관광객들도 좀 더 많이 찾으리라 예상됩니다만 무료개방으로 인해 시설물들의 보존문제와 쓰레기 등의 처리 비용이 더 들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성숙한 시민의식 으로 그나마 남아있는 왕실문화를 잘 보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행 TIP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64(운니동 114-10)
▷관람시간 : 동절기(11~3월) 09:00~18:00, 하절기(4월~10월) 09:00~ 19:00, 매주 월요일 휴관
▷입장료 : 무료
▷다국어 음성안내시스템(MP3)대여가능(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 1,100원
▷문의 : 02-766-9090(운현궁 관리사무소)
▷가는길 교통 : 지하철 3호선 안국역 4번출구 하차 도보 5분거리(약 300m)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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