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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해남여행] 두륜산 대흥사, 해남여행 추천코스

by 드래곤포토 2014.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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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여행시 가봐야할 곳, 두륜산 대흥사

해남 대흥사는 제가 대학시절 두륜산을 등산하면서 들렀던 곳입니다. 서울에서 먼지역이라 이후 성인이되어서 해남을 몇번 들렀지만 쉽게 가볼수는 없는 곳이었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해남지역의 절을 둘러볼 기회가 생겨 미황사를 거쳐 해남 대흥사에 들렀습니다. 대학시절에는 시외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려 힘들게 가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관광버스가 쉽게 들어갈 수 있다는것만으로 도 격세지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의 대흥사는 옛모습을 저에게 보여주지는 않고 아쉽지만 확장되고 커져버린 생소한 모습만 보여주었습니다.

IMG_2976 일주문

대흥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된 유서 깊은 도량으로 해남 두륜산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대흥사는 1789년에 정조대왕으로부터 표충사 편액을 하사받아 서산대사의 충의를 기리게 되었고 사찰 경내는 북원, 남원, 별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북원에는 대웅보전과 응진당 삼층석탑(보물 제320호)등이 있고 남원에는 천 분의 부처님(전남유형문화재 제52호)을 모신 천불(전남 유형문화재 제94호)전과 용화당(전남유형문화재 제93호) 등이 있으며 별원에는 표충사(전남기념물 제19호), 대광명전(전남유형문화재 제94호), 성보박물관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북미름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 308호) 북미륵암 삼측석탑(보물 제301호), 서산대사 부도(보물 제1347호) 등의 성보문화재가 있습니다.

IMG_2793P 부도전

부도는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팔각원당형 혹은 종형 등이 있으며 절경내에 있는 불탑이 부처님의 사리나 불상, 경전 등을 보관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리고 탑비는 비문을 돌로 새겨 부도 근처에 세웁니다. 그래서 흔히 부도전에는 부도와 탑비가 함께 건립되어 있습니다.

이곳 부도전에는 부도 56기와 탑비 17기가 모셔져 있는데 생몰년이 확인되는 것은 모두 조선후기 스님의 부도와 탑비입니다. 서산대사를 비롯하여 역대 종사(宗師)와 강사(講師)들의 부도와 탑비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IMG_2800P 해탈문

IMG_2801M 해탈문에서 본 대흥사

해탈문을 벗어나면 안내판을 통해서 두륜산의 봉우리가 부처님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IMG_2805 침계루

먼저 해탈문에서 좌측에 있는 대웅전으로 향했습니다. 대웅전앞에 있는 침계루의 모습입니다.

IMG_2806 대웅보전

대웅보전이란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불로서 중생에게 설법을 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전각입니다. 내부에 모셔진 삼존불은 조선후기에 조성된 목조불이며 부처님 뒤에 있는 탱화는 대한제국 광무5년(1901)에 조성한 것입니다. 이 건물은 조선 현종 8년(1667)에 중건 된 적이 있지만 대한제국 광무3년(1899)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새로 복원한 것입니다.

IMG_2815P 대웅보전

대웅보전은 조선후기 다포계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정면의 화려한 용두장식이 건물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습니다. 계단석 소맷돌 양쪽에 조각된 사자머리 한쌍은 전각 수호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편액의 글씨는 당대의 명필 원교 이광사(1705~1777)가 썼습니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1840년 제주도로 귀양가다가 대흥사에 들러 대웅보전 편액을 새로 써서 이광사의 편액 대신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제주도에서 돌아오는길에 대흥사에 들러 자신이 썻던 편액을 떼어내고 이광사의 편액을 다시 걸게하였다고 합니다.

IMG_2817 윤장대

대웅보전옆에 있는 윤장대는 절에서 경전을 놓은 공간에 축을 달아 회전하도록 만든 책장입니다. 윤장대를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쌓여 소원이 성취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전경이라 경을 회전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님 법을 법륜이라고 하며 부처님이 법을 설하는 것을 전법륜이라고 합니다. 법의 수레바퀴가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굴러갈 수 있듯이 부처님의 가르침 역시 어느 한사람 어는 한곳에 머물지 않고 모든 곳에서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에 법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에 윤장대를 돌리며 소원을 빌고 마음의 위안을 얻기 바랍니다.

IMG_2823 응진전 삼층석탑

응진전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자장율사께서 중국에서 가져온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이곳에 모셨다고 합니다. 1967년 1월에 탑을 해체보수하는 과정에서 동으로 만든 12cm 높이의 여래좌상 1구가 발견되었습니다. 북미륵암 삼층석탑과 함께 통일신라 석탑양식이 이 지역까지 전파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IMG_2841P 연리근

대흥사에는 해남군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500년의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이 느티나무는 연리근으로 가까이 자라는 두나무가 서로 만나 합쳐지는 현상을 연리(連理)라고 합니다. 오랜세월을 함께하며 햇빛을 향해, 바람을 따라 서로 부대끼고 겹쳐져 하나가 되는 것으로 뿌리가 만나면 연리근, 줄기가 겹쳐지면 연리목, 가지가 하나되면 연리지라고 합니다. 이렇게 두 몸이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각각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연인의 사랑에 비유되어 일명 '사랑나무'라고도 불립니다.

IMG_2844 천불전

천불전은 언제 어느 곳에나 항상 부처님이 계신다는 의미에서 천불을 모시고 있는 전각입니다. 지붕과 건물의 맵시가 매우 경쾌하며 정면 3칸의 분합문 전체가 아름다운 꽃창살로 꾸며져 있습니다. 편액의 글씨는 당대 명필 이광사(1705~1777)가 썼습니다.

IMG_2857P 천불전

이곳의 천불은 경주 불석산의 옥돌로 조성한 것으로 1817년 배로 싣고 오던중 부산 앞바다에서 태풍을 만나 일본 큐슈로 표류해 다음해인 1818년에 대흥사로 돌아와 봉안된 것입니다. 천불전앞의 문양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IMG_2848 용화당

천불전옆에 있는 용화당은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로 지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둥의 높낮이를 조정하여 건축한 자연 친화적인 건물입니다. 건물의 남쪽 부분은 'ㄱ'자로 꺽여 돌출시킨 부분이 있어 맞배지붕을 얹어 연결시켰고, 다른쪽은 팔작지붕으로 꾸몄습니다.

이 건물은 순조 11년(1811)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초의선사(1786~1866)의 스승인 완호대사(1758~1826)가 스님들의 교육을 위한 강당 겸 선방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1813년에 중건한 것입니다. 편액의 글씨는 구한말 서예가로 유명한 김돈희(1871~1936)가 썼습니다.

IMG_2861V 무염지

대흥사 무염지는 일반적인 연못과는 달리 가장자리가 절묘하게 굴곡져 있습니다. 연못 모양이 마음심(心)자 모양이라 하는데 쉽게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연못 가운데 바위에 무염지(無染池)라 새겨놓은 바위가 있습니다.

IMG_2865 표충사 호국문

표충사는 서산대사 휴정(1520~1604) 스님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으로서 조선시대 대흥사의 위상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대흥사는 임진왜란 이후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해지고 그 법맥을 이어왔기 때문에 선과 교의 종원으로서 자부하였습니다. 이에 1788년에 사액사우의 건립을 추진하여 표충사로 지정되었고 정조대왕이 직접 쓴 '표충사' 편액이 내려졌습니다.

호국문과 예제문을 지나가면 표충사와 표충비각이 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대부분 1836년에 다른 곳으로 옮겨지었다가 1860년 10월 다시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은것입니다.

IMG_2866 보련각

초의선사가 조선 철종 3년(1852)에 역사 조사들의 진영을 모시기 위해 이곳에 첨을 건립하엿습니다. 1920년 이후 서산대사의 제자인 소요태능(1562~1649)스님과 편양언기(1581~1644)스님의 법손들이 두 문파의 선사 22위의 진영을 보련각에 공동으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후 건물이 퇴락하여 1944년에 중수하였습니다. 본래는 대광명전 뒤에 위치하여던 건물인데 2009년에 현 위치로 옮겼습니다.

IMG_2868 표충비각

IMG_2870 '서산대사표충사기적비명'과 '건사사적비명'(우측)

표충비각에는 서유린(1732~1802)이 조선 정조 15년(1791)에 지은 '서산대사표충사기적비명'과 연담유일(1720~1799) 스님이 조선 정조 16년(1792)에 지은 '건사사적비명'이 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860년에 표충사를 이전하여 건축시 지은 것입니다.

IMG_2876P 표충사

표충사는 1788년에 건립되어 정조대왕이 직접 쓴 '표충사' 편액이 하사되었습니다 '어서각'이라는 편액은 '임금의 글이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이곳의 편액이 정조대왕의 글씨임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팔도십육종도총섭으로서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 휴정(1520~1604) 스님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중앙에 서산대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고, 양쪽으로 서산대사의 제자로 전란에서 공적을 세운 사명당 유정스님과 뇌묵당 처영스임의 진영을 모셨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1836년에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1860년 10월에 다시 현재의 자리롤 옮겨지었고 상량문은 초의선사가 썼습니다.

조선후기에 불교계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국왕이 편액을 내린 사당으로는 선산대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으로 대흥사의 표충사와 조선정조 18년(1794)에 편액이 하사된 묘향산 보현사의 수충사가 있고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으로 조선 영조 19년(1743)에 편액이 하사된 밀양 표충사가 있습니다.

IMG_2880 수심당(대광명전 구역)

선원의 요사채인 수심당을 들어서면 대광명전을 중심으로 동국선원, 벽안당, 요사채가 있습니다. 이곳은 대흥사에서 선원에 해당하는 구역으로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IMG_2788C 대흥사 주요 배치도

두륜산은 남해 가장자리에 우뚝 서 절경을 이루는 산입니다. 두륜산은 해발 703m로 예로부터 큰 언덕(산)이라는 뜻으로 '대듬' 또는 '한듬'으로 불렸습니다. 이 때문에 어귀에 위치한 대흥사를 '한듬절'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이 절은 옛부터 대둔사 또는 대흥사로 불리었으며 일제시대때부터 대흥사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제가 간날은 성보박물관이 공사중이라 들러볼 수는 없었지만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의 유적으로 서산대사비와 관련 유물이 대흥사 유물전시관에 보관전시되고 있습니다.

여행 TIP

▷소재지 : 전남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구림리 799)
▷입장료 : 어른 3,000원, 중고생 1,500원, 어린이 1,000원
▷주차비 : 승용차 2,000원, 버스 3,000원
▷대중교통
- 서울 : 강남고속버스터미널(서울→해남) 7 회 운영
- 광주 : 시외버스터미널(광주→해남), 첫차:05:50, 40~60분 간격 막차: 22:00
- 부산 : 사상 시외버스터미널(부산→순천→보성→장흥→강진 경유 →해남) 4회 운영
- 해남시외버스터미널 : 대흥사 가는 군내버스→대흥사입구 하차

대흥사 위치도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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