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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능호관 이인상 기념사업회, 2018 가을 서산예산 문화답사여행

by 드래곤포토 2018.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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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호관 이인상 기념사업회 8차, 서산예산 문화답사여행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은 18세기 조선의 예술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시(詩)·서(書)·화(畵)를 갖춘 문인화가로 경기도 양주시 회암면 모정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추사 김정희 등 조선후기의 내노라하는 인물에 비해 우리에게 덜 알려졌지만 그의 그림과 글씨가 수준 높은 경지에 이르러 당시 문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후대의 문인과 서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능호관 이인상 기념사업회(회장 김용환)는 이러한 능호관 이인상의 업적과 생애를 발굴하여 널리 전파하는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양주 능호관 이인상 기념사업회에서는 매년 2회 문화답사여행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2018.10.29에 있었던 서산예산답사여행 일정을 정리하여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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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호관 이인상 기념사업회(회장 김용환) 8번째 답사로 2018년에는 안동답사에 이어 서산답사를 하게되었습니다.
2018.10.29 아침 6시 30분 양주 회암사지박물관에서 출발하여 해미읍성부터 답사여행을 시작하였습니다.

■ 600년전 시간여행, '해미읍성'

해미읍성은 고려말 부터 많은 피해를 준 왜구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하여 덕산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을 해미로 옮기기로 하면서 조선 태종17년(1417)부터 세종3년(1421)까지 축성하여 충청도의 전군을 지휘하던 병마절도사영성(兵馬節度使營城)입니다.

조선후기 천주교박해와 관련하여 회화나무, 옥사, 자리갯돌 등의 유적이 남아있으며 2014.8.1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곳 해미읍성을 방문한적이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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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3년(1652)까지 230여년간 병마절도사영의 기능을 하였으며, 청주로 옮겨간 후 해미 현감이 이 성에 옮겨와 겸영장(兼營將)이 되면서 해미읍성이 되었습니다.

해미읍성은 동헌, 객사, 내아, 옥사 등의 건물이 복원되어 있으나 전체적으로 황량한 터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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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은 우리나라의 천주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입니다. 교도들을 투옥하고 문초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터만 남아있던 옥사를 복원, 재현해 놓았습니다.

1790년 부터 100여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규정하여 이 곳에서 투옥 및 처형을 하였는데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도 이 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교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참고로 동그란 원으로 된 담장을 옥이라 하고, 옥안에 가두어 두는 집을 옥사라 합니다. 옥사는 죄가 확정될때까지 잡아 둔다고 합니다. 만약 사형이 언도되어 최종 왕의 결정이 날때까지 옥사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현대와 달리 밥을 주지 않고 가족들이 밥등 옥바라지를 해야하기에 오래 감옥에 있을 수록 가족이 힘들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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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사 앞에 서있는 회화나무는 수령300년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790~1880년대에 이 곳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어 이 나무의 동쪽으로 뻗어 있던 가지에 철사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하였으며 철사줄이 박혀있던 흔적이 현재까지도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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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는 건물의 중앙 정청에 위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관아의 대소 관원들이 국왕에 대한 예를 올렸으며 양편에 있는 방들은 조정이나 상부에서 파견된 관원 및 귀빈들의 숙소로 사용했던 곳입니다.
이 곳 객사는 1999년 7월에 복원한 것입니다.

동헌은 병마절도사를 비롯한 현감경영장의 집무실로서 관할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이 행해지던 건물입니다.
해미 현감겸영장은 인근 12개 군, 현의 병무행정도 담당하였습니다.

내아는 관리와 가족들이 생활하던 관사로 2000년 11월 복원하였습니다. 내아는 5칸집으로 한옥의 마당은 방의 개념으로 손님맞이하고 밥먹고, 김장하고 마당에 평상을 펴고 돗자리 생활할 수 있는 공간임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 여행 TIP

▷소재지 : 충남 서산시 해미면 남문2로 143
▷관람시간 : (3~10월) 05:00-21:00, (11~2월) 06:00-19:00
▷입장료 : 없음
▷전화 : 041-688-0999


■ 천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 수덕사 '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노래로 불리어 잘알려진 수덕사는 현존하는 백제 고찰의 하나로 백제 위덕왕(554-597) 재위시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수덕사 경내 옛 절터에서 백제와당이 발견됨으로써 백제시대 창건하였다는 입증자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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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사찰은 기와지붕을 기둥이 감당해야 합니다. 이러한 주심포(柱心包)건물은 지붕이 낮습니다. 건물이 낮고 지붕이 낮아 축대를 쌓아 축대위에 건물 올리는 방식으로 웅장해 보이도록 하였습니다.
이방법은 고려시대 왕궁도 그렇고 고려시대 건물의 특징입니다.

국보 제49호예산 수덕사 대웅전은 충렬왕 34년(1308)에 건립되었습니다.
건축은 고려시대에 유행된 주심포양식이고 정면 3칸, 측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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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 맞배지붕의 선과 노출된 목부재의 구도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된 연대가 확실하고 조형미가 뛰어나 한국목조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입니다.

전체적으로 균형미를 갖춘 수덕사 3층 석탑은 신라 문무왕 5년에 건립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한 고려시대 초기의 석탑으로 추정됩니다. 상면에서는 1단의 받침으로 그 위에 몸돌을 받고 있으며, 지붕돌은 끝이 치켜 올라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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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수덕사는 비구니 절이 아니고 비구 스님을 배출하는 '견성암'이 수덕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여행 TIP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덕산명 수덕사 안길 79
▷입장료 :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전화 : 041-330-7700


■ 화가 이응노의 '수덕여관'

수덕사 매표소 맞은편에 자리한 수덕여관은 이응노화백이 1944년 구입하여 6.25 전쟁 당시 피난처로 사용하였으며,
1959년 프랑스로 건너가기 전까지 머물면서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했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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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암 이응노화백이 작품활동을 하던 수덕여관과 우물, 암각화를 포함한 일대가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응노화백은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세계를 접목하는 시도를 한 근현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예술가로 유럽화단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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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화백(1904~1989)은 충청도 홍성 출신으로 파리로 유학해 프랑스에서 왕성한 활동을 한 화가 입니다.

그는 6.25전쟁중 헤어진 아들을 동베를린에서 만난후 1967년 동백림 간첩단사건에 연루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고, 프랑스 정부의 탄원으로 1969년 사면된 뒤, 이곳에 머물면서 바위에 2점의 문자적 추상화로 암각화를 남겼습니다.

암각화는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며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하면서 이어지는 번영과 쇠락(영고성쇠: 榮枯盛衰)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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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이화백은 1983년 프랑스에 귀화했으며, 1987년에는 북한의 초대를 받아 평양에서 전시회를 여는 등 친북활동을 하여왔습니다.

그는 1977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영화배우 윤정희씨 납치미수사건과 연루되어 정부의 입국금지로 그의 입국은 좌절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예술가로 성장한 그였지만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극복치 못하고 파리에서 세상을 하직하였습니다.

일제시대때 지은 것으로 보이는 수덕여관은 가운데 안마당을 두고 'ㄷ'자 초가가 감싸고 있으며 소담하면서 궁색하지 않은 전형적인 농가모습입니다.

☞ 여행 TIP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안길 79
▷전화 : 041-330-7700


■ 수덕사 맛집, '별미산채'

수덕사 입구에는 산채더덕정식 식당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여행지에서 보통 단체손님을 받는 음식점은 시끄럽고 그냥 한끼 때우는 정도로 생각해야 속이 편한집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예상외로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점이라 수덕사 방문시 들러볼만한 식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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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채더덕정식은 우렁된장찌개, 도토리묵, 각종산채나물들로 건강한 음식들로 가득한 별미 한정식입니다.
인삼과 마를 이용한 요리, 조기, 도토리묵, 우렁된장찌개와 더덕구이, 불고기, 우렁이 된장찌개 등이 나와 입맛을 돋구어 줍니다.

☞ 여행 TIP

▷소재지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33-4 (수덕사 도립공원 주차장앞)
▷메뉴 : 더건강한밥상정식 20,000원, 산채더덕정식 15,000원, 산채더덕비빔밥정식 13,000원, 산채더덕비빔밥 10,000원, 산채비빔밥 8,000원
▷전화 : 041-337-6363


 

■ 배흘림 기둥의 진수를 보여주는 '개심사'

개심사는 충남 4대 사찰 중의 하나로 백제시대에 혜감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대웅전의 기단이 백제 것으로, 현존 건물은 성종 6년(1475)에 산불로 소실된 것을 성종 15년(1484)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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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문을 지나 10여분 걸어올라가면 외나무 다리가 있는 연못을 만나게 됩니다.
풍수지리에서 상왕산은 코끼리 모양이라 부처님을 상징하는 코끼리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개심사 앞에 연못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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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심검당은 개심사 건물이 성종 6년(1475)에 화재로 불타 없어진 것을 성종 15년(1484)에 중창하였다는 기록에 의거 이때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후기에 다시 중창되었습니다.

기단석위에 자연석의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이 가미된 둥근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위부분에 공포를 짜올려 지붕의 무게를 모두 기둥에 받도록한 주심포 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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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은 조선시대 초기 목조건물로 맞배지붕의 다포계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내부는 주심포계 형식의 특징인 결구 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연등천장을 하고 있어 일종의 절충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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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건물의 기둥을 보면 굽은 나무를 기둥에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굽고 휘어진 나무가 기둥으로 쓰일 것이라고는 누구나 쉽게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S라인 자태를 보여주는 개심사의 기둥들은 역발상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여행 TIP

▷소재지 : 충남 서산시 운산명 개심사로 321-86
▷전화 : 041-688-2256


■ 사적 제316호 서산 '보원사지'

서산 보원사지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보원사의 옛터로 통일산라~고려초에 크게 융성하였고 왕사, 국사를 지낸 법인국사 탄문이 묻힌 곳이며 주변에 100개의 암자와 1,000여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전하는 대사찰이었습니다.

유물로는 백제계의 양식 기반위에 통일신라와 고려초의 석탑양식을 갖춘 5층석탑(보물 104호), 통돌을 장방형으로 파내어 만든 국내 최대의 석조(보물 102호), 광종 26년(975)에 법인국사가 입적하자 광종의 지시로 세운 보승탑(보물 105호), 법인국사의 생애가 기록된 보승탑비(보물 106호), 사찰에 불교행사가 있을 때 불기나 괘불을 걸기위해 만든 당간지주(보물 103호)가 있습니다.
가까이에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백암사지 등 불교유적이 집중되어 있어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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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터에 신라와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대형 철불 2구가 있던 것을 중앙박물관에 전시중입니다.

1967년도에는 백제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는 등 유물로 보아 당시에는 매우 융성했음을 알 수 있으며, 백제와 신라, 고려초 불교미술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있는 사적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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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03호 보원사지 당간지주는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석조물입니다.
당간은 절 앞에 세워 부처나 보살의 위엄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의미를 가진 당이라는 깃발을 다는 깃대입니다.

통일신라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기단부가 없어진 것을 화강암으로 새로 보강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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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102호 보원사지 석조는 화강석의 돌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절에서 물을 담아 쓰던 용기입니다.
안쪽과 위쪽만 정교하게 다듬고 바깥쪽은 거칠게 다듬은 것으로 보아 땅에 묻어두고 사용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고려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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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미려하고 경쾌하고 안정감이 있는 보물 제104호 보원사지 5층석탑은 통일신라~고려초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입니다.

목조탑에서 석조탑으로 변환되는 과정의 형식이며 아래층 기단에 사자상을 위층 기단에 8부중상(八部衆象)을 새긴것이 특이합니다.

옥개석 받침을 4층으로 한 것은 신라계 양식을 가미한 것으로 백제지역에 신라이후 세워지는 석탑의 공통된 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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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보원사지 밥인국사탑은 법인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은 975년에 건립된 부도 탑입니다.
당시 임금인 광종이 슬퍼하며 부도를 세울 것을 지시하여 세워진 것으로 옥개석에 3단 받침을 둔 것은 부도나 탑을 막론하고 이 지방에서 보기 드문 형식이며, 추녀, 서까래가 살짝 들어올려져 날렵한 것 등은 백제계 양식의 특징입니다.

법인국사탑비는 고려 경종3년(978)에 경종의 지시로 세워졌으며 비문에는 법인국사의 일대기를 적어놓았습니다.

법인국사는 역대 왕들과 가까웠으며 국가 시행불사를 도맡아 시행하였고 특히 광종은 정신적인 지주로서 왕사, 국사로 가까이 있게하였습니다.

☞ 여행 TIP

▷소재지 :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48회 70필지 서산보원사지



■ 천년을 이이온 미소,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충남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자락 용현계곡 절벽에서 서산마애삼존불의 미소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보살입상과 반가사유상이 좌우에 조각되어 있는 이 삼존불은 자연암벽위에 새긴 마애불로 얼굴 가득히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어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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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불인 장쾌하고 넉넉한 미소를 머금은 석가여래입상, 과거불인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간직한 제화갈라보살 입상, 미래불인 천진난만한 소년의 미소를 품은 미륵반가사유상은 백제 특유의 자비로움과 여유를 느끼게 해줍니다.

마애불이 새겨진 돌이 80도로 기울어져 있어 비바람이 정면으로 들이치지 않아 미학적 우수함은 물론 고학적 치밀함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장쾌하고 넉넉한 미소를 머금은 석가여래입상,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간직한 제화갈라보살 입상, 천진난만한 소년의 미소를 품은 미륵반가사유상은 백제 특유의 자비로움과 여유를 느끼게 해줍니다.

마애불이 새겨진 돌이 80도로 기울어져 있어 비바람이 정면으로 들이치지 않아 미학적 우수함은 물론 고학적 치밀함도 감탄을 자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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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문을 들어서 왼쪽 바위에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의 터가 있습니다. 2005년 3월 도난되었다는데 아직도 이 곳은 텅 빈 공간으로 남아있습니다.

예전엔 터위에 잃어버린 불상의 사진이라도 놓여있었는데 이제는 그 사진마저 없어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서서히 사라져 버리는 것 같습니다.

☞ 여행 TIP

▷소재지 : 충남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길 65-13
▷전화 : 041-660-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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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미소 '서산 용현리 마애산존불상'을 마지막으로 답사를 마치고 다시 양주로 되돌아 왔습니다.

답사여행에는 양주문화원 홍정덕 교수가 함께 하여 답사지마다 상세한 해설로 아는만큼 보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답사여행이었습니다.

답사여행에 함께한 시간 모두에게 소중히 잊혀지지 않는 유익하고 좋은 추억여행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이창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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