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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나주당일여행 2] 나주향교, 전국 최대규모의 향교

by 드래곤포토 2015.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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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최대규모와 격식을 갖춘 나주향교

나주곰탕 노안집에서 점심을 하고 다시 사무실로 들어갔다가 다행히 업무처리가 일찍 끝나게 되어 사무실을 빨리 나올 수 있었습니다.

기차 출발시간(18:57)까지는 3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있어 나주를 돌아보기위해 나주버스터미널쪽으로 갈 생각이었습니다. 회사앞 버스정류장에 갔으나 거기서는 1160,770번 나주역가는 버스밖에 없고 그나마 30~40분을 기다려야했습니다. 나주 신도시에서는 택시도 다니지 않아 나주터미널로 가는 버스 정류장을 찾는게 빠를 것 같았습니다.

마침 사학연금빌딩에서 나오는 분이 있어 나주터미널버스를 타려면 가까운 정류장이 어디냐 물어보니 이곳은 버스기다리기도 택시타기도 힘든 곳이니 자기가 시내가는 길이니 자기차를 태워주겠다하였습니다.

나를 태워주시는 분은 동신대 교수님이셨고 이제 정년퇴직이라 연금관계를 알아보려 왔다가 가는길이라 하였습니다. 다행히 제가 다니던 회사의 직원도 잘알고 하여 회사일이 일찍끝나 나주를 둘러보려 옛 나주역부터 가려한다하니 거기까지 데려다 주겠다하여 나주터미널이 아닌 옛 나주역으로 바로 가게되었습니다.  


DSC04369 옛 나주역

나주역사는 현재 전라남도 기념물 제 183호로 지적되어 있으며 1913.7.1 호남선 개통에 따라 신축한 근대건축물입니다. 신축당시의 상황을 알려주는 설계도나 공사 시공 관련자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나주 역사는 1929.10.30 오후 4시경 나주 통학생과 일본인 학생 사이에 일어난 다툼이 계기가 되어 전국적인 학생독립운동으로 확산되어 154개교, 54,000여명의 학생이 참여한 일제하 3대 독립운동의 하나인 학생독립운동 진원지입니다.  


DSC04366P

1923년에 북쪽벽에 화물창고 4평을 증축하였습니다. 1970년 일본기와를 골스레트로 바꾸고 역사 건물 외부에 있던 개찰구를 건물 내부로 바꾸었습니다. 현재 역사의 기본 구조나 골조 목재 등은 초창기 당시 그대로 입니다.

내부에는 당시 역무원 복장을 한 마네킹이 있고 옛 승차권 등을 전시해 놓았습니다.  


DSC04372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개인적으로는 옛 나주역에 도착하여 옛나주역과 그 옆에 있는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관람할 생각이었으나 이분은 나주역을 안내해주고 나서, 나주에 오면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보다는 나주향교를 가보야한다며 나주향교까지 데려다 주겠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주역옆에 있는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을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DSC04375 남고문

나주향교로 가는 길에 잠시 차에서 내리게 해주어 남고문(南顧門)을 담았습니다. 남고문은 나주읍성에서 남문으로 가장 번화하였던 곳이라 합니다. 사람들이 이 남문을 나서면 임금님이 계신 곳인 금성관쪽을 돌아보았다하여 남고문이라 했다고 합니다. 남고문은 1400년대에 축성되었던 것을 1993년에 복원되어 사적 337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남고문에서 나주내아앞을 지나 영금문(서성문)을 거쳐 나주향교앞에 도착해서 서로 명함을 교환하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내려서 그분의 명함을 보니 동신대 교수로 한국문화재연구소 차정환 소장님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차정환 교수님은 유명 향토사진작가이며 농촌문화를 주제로 한 작품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고 합니다.  


DSC04378 외삼문과 하마비

나주향교는 600년 전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향교로 조선시대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곳이지만 상당히 큰 규모의 향교입니다.

나주 향교는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성립되기 이전에 지방에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으로인재를 양성하고 지역문화를 선도하는 거점이었습니다. 나주향교는 전국 향교중 최대 규모와 격식을 갖추고 있어 한국 향교 역사와 건축을 연구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문화유산입니다.  


DSC04460

나주향교앞에서 하마비(下馬碑)와 나주향교 정문을 사진촬영하고 정문을 보니 정문은 굳게 잠겨있었습니다. 이거 겉만 구경하다 가야하는 가 싶었지만 내가 향교 안을 기웃거리자 그옆에 공사를 하고 있던 분이 어디서 오셨냐고 묻기에 서울서 왔는데 문이 잠겨 그냥 가야겠네요 했더니 출입문은 여기가 아니라 옆으로 더들어가라고 안내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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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을 따라 쭉들어오니 주차장이 보이고 주차장옆에 비석군이 있으며 왼쪽에 나주향교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조그만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DSC04392 비석군

나주향교 비석군은 나주향교운영관리와 관련하여 역사적인 사실들을 기록하여 놓은 비를 모아놓았습니다.. 특히 충복사유허비는 정유재란때 향교 노비의 우두머리 김애남이 위패를 안전하게 보호한 공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DSC04394 출입문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 조선 태조 7년(1398)에 공자와 제자들을 배향하는 문묘 대성전과 유학을 강학하는 명륜당, 그 밖에 부속건물로 이루어진 성균관을 지었고 , 그후 각지방에 성균관을 본떠서 향교를 세웠습니다.  


DSC04396 동재

출입문에 들어서면 가장먼저 눈에 띄는 것이 동재입니다. 동재는 명륜당 동쪽에 있는 집으로 유생들이 글공부도 하고 유숙하던 곳으로 지금의 기숙사와 같은 기능을 하였습니다.다른 향교의 기숙사 건물보다는 규모가 훨씬 크다고 합니다.  


DSC04400

담벼락을 따라 그대로 들어가면 명륜당이 먼저 반깁니다. 명륜당을 가운데 두고 좌우 양쪽에 기숙사역활을 한 동재와 서재가 나란히 서있습니다.

나주향교 명륜당은 정면 중앙에 앞면 3칸의 건물이 있고 좌우에 3칸 건물이 날개처럼 달려 있습니다. 명륜당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이 동익헌, 왼쪽이 서익헌입니다.

명륜당은 나주향교의 강학공간입니다. 서울 성균관 명륜당과 비슷한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DSC04403

동재 건물 오른쪽에 있는 나무는 수령 500년의 비자나무로 나주시 보호수입니다.  


DSC04407P 서재

서재는 명륜당 서쪽에 있는 집으로 유생들이 글 공부도 하고 유숙하던 곳으로 지금의 기숙사와 같은 기능을 하였습니다. 다른 향교의 기숙사 건물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고 합니다.

명륜당이 있는 마당쪽으로 창문이 있고 마루와 방문은 반대편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동재도 서재와 모양이 똑같습니다.  


DSC04410 연지

연지는 명륜당 서쪽에 있는 조그만 연못입니다.  


DSC04418P 충효관과 보존각

나주에서 행사로 충, 효를 가르치는 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DSC04422P 고직사

명륜당 주변을 돌아보고 나가려하니 관리인인듯한 분이 방명록에 쓰시고 가라 하여 방명록을 쓰면서 대성전쪽은 문이 잠겨있는데 거기는 볼 수 없냐하니 문을 열어주어 다시 대성전안을 구경하게되었습니다.  


DSC04425 대성전

대성전은 보물 제394호로 향교의 중심건물이며 공자를 중심으로 27위의 위패를 모신 공간입니다. 건물의 크기나 모양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대성전 중 으뜸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유교건축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자료라 합니다.

특히 대성전 흙벽은 공자의 고향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말과 임진왜란 이후 성균관을 다시 지을때 나주향교 대성전을 참조하여 지었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대성전은 조선시대에 나주향교가 건립되면서 처음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1670년 소두산 목사에 의해 대성전 중수가 이루어졌고 고종 6년(1869)에 대성전을 비롯하여 대대적인 보수를 거쳤으며 순조 33년~현종 3년(1833~1837), 고종 32년(1906), 2008년에 대성전을 해체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DSC04430P 내삼문 안쪽과 외삼문 안쪽

출입문이 3칸인 문으로 안에 설치되어 있어 내삼문이라 부릅니다. 출입시에는 동입서출 즉 동쪽문으로 들어오고 서쪽문으로 나갑니다. 오른쪽은 내삼문 안쪽에서 본 외삼문입니다.  


DSC04438 동무와 보호수

600년 된 은행나무로 1982년에 나주시 보호수로 지정되었습니다. 향교에 은행나무를 심는 이유는 은행나무가 유교교육의 상징인 행단(杏亶)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공자가 고향 중국 산동성 곡부현에서 큰 은행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제자들을 가르쳤던 것에 착안해 전국적으로 향교에는 주로 은행나무를 심으며, 또 하나의 의미는 은행나무에 벌레가 끼지 않듯이 출세에 눈이 멀어 벌레가 끊는 탐관오리가 되지말고 바른 사람이 되라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동무는 대성전앞 동쪽에 있는 집으로 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입니다.  


DSC04436 서무

서무역시 대성전옆 서쪽에 있는 집으로 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입니다.  


DSC04448 대성전쪽에서 본 명륜당

대부분이 전학후묘(앞에 명륜당, 뒤에 대성전)구조이나 나주향교는 전묘후학(앞에 대성전, 뒤에 명륜당)의 구조입니다.  


DSC04444 대성전과 명륜당을 이어주는 쪽문

대성전을 본 후에는 다시 쪽문으로 나와야 합니다.  


DSC04459P 사마제

나주향교를 나오면서 나오는 길목에 있는 사마제를 들러보았습니다. 대문에는 유림경로당이라 써있었는데 대문은 잠겨있었습니다. 사마제는 유생들이 공부한 곳으로 나주향교밖 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나주향교는 고려 성종 6년(987) 8월 전국 12목에 향교를 설치할 때 창간되어 조선 태조 7년(1398)에 중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여러차례 중수하였고 현종 5년(1839)과 고종 10년(1873)에 크게 중수하였으며 근래에 발굴조사를 거쳐 동재와 서재를 원래 규모대로 복원하고 대성전을 중수하였습니다.

오늘날 나주향교는 전통문화를 전승하고 향교를 21세기에 맞는 강학공간으로 만드는데 힘쓰고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 : 12간지로 표시되는 날짜 가운데 그 달의 첫번째 丁자가 든 날)에는 석전대제(釋奠大祭 : 공자를 모신 사당인 문묘에서 지내는 큰제사)를 지내고 있습니다.

여행 TIP

▷소재지 : 전라남도 나주시 향교길 38 나주향교
▷전화 : 061-330-8114 
 


 나주향교 위치도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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