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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미륵사지 석탑, 백제의 혼이 서린 미완의 예술작품

by 드래곤포토 2021.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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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혼이 서린 미완의 예술작품, 익산 미륵사지 석탑

미륵사지는 백제시대 최대의 사찰터로 1998년 서탑이 붕괴 위험 등으로 인하여 해체 복원이 시작되었고 21년만인 2019년 완료되어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저는 해체복원작업중이었던 2012년 1월과 2015년 11월에 이 곳을 2번 다녀온적이 있었는데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이 궁금해 미륵사지를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미륵사지는 남아 있는 백제 시대의 절터 가운데 가장 크며, 미륵사는 무왕 대(600-641 재위) 에 지어졌습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 무왕과 왕비가 사자사에 가는 길에 지금의 미륵산인 용화산 밑의 연못에서 미륵삼존이 나타나자 연못을 메우고 세 곳에 각각 탑과 법당, 회랑(주요 공간을 둘러싸며 지붕이 있는 복도)을 짓고, '미륵사' 라 하였다고 합니다.

미륵사지 동서탑 앞쪽에는 각각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습니다. 석탑 사이에는 원래 목탑이 세워져 있었다합니다.

미륵사지는 1980년부터 1994년까지 본격적으로 발굴 조사를 하였는데, 세 곳에 각각 탑과 법당이 회랑으로 둘러싸인 것이 확인되어 삼국유사의 기록이 사실임이 밝혀졌습니다.

발굴하면서 출토된 유물과 절의 독특한 배치 방식에서 백제 문화의 독창성과 탁월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행사나 의식이 있을때 당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인 당간을 지탱하기 위해서 당간 양쪽에 설치하는 돌기둥인 당간지주는 미륵사지 경내에 석탑의 남쪽에 동서로 약 90m간격을 두고 규모나 형태, 조성수법이 매우 비슷한 당간지주 2기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곳 당간지주는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당간지주 옆에 서있는 것은 당간석이라 합니다.

동쪽에 있는 석탑은 1974년 기단의 규모와 형태로 보아 서탑과 같은 백제시대의 석탑이 있었음을 알게되어 그 탑자리에 1991년부터 복원하여 1992년에 완공한 석탑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볼 때 동쪽에 있는 석탑은 똑같은 형태이지만 기존의 서탑에 비해 무언가 어색함이 느껴집니다.

석탑 뒤쪽에는 금당지가 있습니다. 정면5칸, 측면 4칸 규모의 미륵사지 금당은 초반석 위에 1m높이의 주춧돌을 올려 지음으로써 의도적으로 지면과 금당 바닥사이에 빈 공간을 만든 독특한 건축양식을 하고 있습니다.

법당 아래 빈 공간이 있었고 고려와 조선 시대의 건물터에서 온돌이 발견되는 등 건물터와 유물로 보아 미륵사가 1600년대까지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금당은 불상을 모신 건물로 탑과 더불어 사찰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건물입니다. 삼국유사에는 미륵삼존이 나타나자 연못을 메우고 탑과 더불어 금당을 세 곳에 두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석탑 뒤쪽으로는 절에서 경전을 강의하거나 설법하는데 사용하는 강당지와 승려들이 생활했던 승방지가 있습니다. 강당지도 역시 휑하니 빈터로 있습니다. 강당지 뒤로 보이는 산이 용화산 입니다.

강당지 우측 뒤로 가마터가 있습니다. 이 곳 가마터는 조선시대 가마터로 미륵사에서 자체적으로 기와를 자체공급하기 위한 생산시설이라 합니다. 가마터는 보호각으로 덮혀져 있습니다.

강당지에서 본 미륵사지 석탑 주변의 모습입니다.

미륵사지 서쪽 서탑은 조선 후기때 벼락으로 인해 일부가 무너져 방치되었습니다.이후 일제시대때 콘크리트로 보수된 상태 였지만, 노후화로 인해 안전성 문제가 대두되어 1998년 부터 수리작업에 들어가 2018년 8월에 마지막으로 남긴 모양 대로 6층까지 복원했습니다.

복원된 탑은 높이 14.5미터, 폭 12.5미터, 무게 1830톤으로 지난 2001년부터 철저한 고증과 세밀한 보수를 거쳐 백제 불교 문화의 진수를 담아냈습니다. 복원발굴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어 미륵사창건 배경과 미륵사 석탑건립시기가 밝혀졌다고 합니다.

석탑 1, 2층은 옛 모습 그대로, 3층부터 6층까지는 일제시대때 바른 시멘트를 뜯어내고 기존 돌들의 81%를 사용해 남아있던 모습 그대로 복원했습니다. 훗날 대체할 돌이 더 나오면, 남은 부분을 채워 나간다고 합니다.

석탑 복원과정에서 전통방법으로 최대한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찾기위해 노력하였다고 합니다. 새재료를 사용할 때는 옛돌의 겉면을 석고로 떠서 그 표면의 느낌까지 되살렸습니다.

복원된 서쪽 석탑 4방향에는 조형물이 4개 있는데 동서쪽에 있는 조형물이 그나마 형태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본래 미륵사지 탑은 몇 층인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남아있는 것이 6층으로 추정에 의한 복원을 지양하고 6층까지만 수리하였다고 합니다.

미륵사지에는 발굴시 나온 많은 유구들을 모아놓았지만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회랑지 앞쪽으로는 서쪽 석탑의 복원과정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석탑의 규모와 구조적인 양식들, 특징들 때문에 수리하는데 상당히 난이도가 높았던 석탑이라 합니다.

서쪽에도 석탑 앞쪽으로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곳에는 당간석은 없었습니다.

미륵사지 서쪽에는 미륵사지 전시관이 있습니다. 전시관은 내부 수리중이었습니다.

국립익산박물관이 전시관옆에 새로 개관했습니다. 시간이 없어 이 곳을 들러보지는 못했습니다.

나오는 길에 본 서쪽 연못입니다. 미륵사지는 독창적인 가람절, 사찰 배치, 목조 건축 기법을 알 수 있는 석탑, 백제 공예 문화의 수준을 보여 주는 사리장엄구, 유적의 연대를 명확히 밝혀 적어 둔 사리봉영기 등의 가치를 인정받아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양식을 그대로 석탑에 옮겨 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웅장하면서도 세밀한 석조기법까지 동아시아 최초라기 보다는 더 놀라움이 가득한 석탑입니다.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 최초의 석탑으로 현존하는 석탑 중 최대 규모입니다. 그리고 목탑을 석조로 옮기는 최초의 시도를 한 탑으로 의의가 있습니다.

☞ 여행 TIP

▷소재지 : 전북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32-2
▷전화 : 063-830-0900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이창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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