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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거문도여행 6] 거문도에 있는 '영국군 수병 묘지'

by 드래곤포토 2010.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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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불탄봉을 돌아 보로봉을 거쳐 거문도 등대를 다녀온 것이 생각보다 꽤 먼 거리였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었으나 언제 또오냐 싶어 일출을 보기위해 억지로 일어났다.

영국군묘지 안내도
P4139330 민박집 앞(05:52)

거문도의 일출을 보려면 영국군 묘지위로 가야 한다고 한다. 6시쯤이 일출시간이라 시간에 맞춰 민박집을 나섰다. 10여분 밖에 시간이 없어 새벽길을 뛰다시피 걸었다.

P4139331 새벽 거문항 거리
P4139332 영국군묘 안내판

골목길로 들어가서 해안 길을 따라 6백여미터를 가면 영국군 수병 묘지가 있다.

영국군묘지는 어스름한 여관과 민가 사이의 좁은 골목길로 올라간다. 나름 관광지라 하지만, 어스륵한 좁은 골목길로 새벽에 묘지를 찾아 간다는 것이 좀 망설여 지기는 했다.

P4139334 골목길을 지나면 해안길이 나온다.
P4139340 거문도 교회 묘지자리를 돌아가야 한다.

영국군 묘지가 우리의 태릉 이나 광릉 처럼 대규모의 묘지도 아니고 단순히 영국 수병이 누워있는 묘지가 관광지라니...

P4139341 거문도교회 묘지자리

그러나 올라가보니 영국군묘지를 보러간다기 보다 영국군 묘지의 위치가 거문도 고도에 경치가 좋은곳에 자리하고 있기에 관광지이름이 영국군묘지로 고착되었다는 말이 더어울릴것 같다.

P4139344 거문도교회 묘지를 지나면..

올라가다 보면 거문초등학교를 지나 폐가도 지나쳐야 하고 무덤이 몇기 안되지만 거문도교회 묘지도 나타난다. 그 묘지를 바로 지나서 영국군묘지가 있다.

P4139345 영국군묘 (06:04)
P4139347 영국군묘위의 정자

우선 영국군묘지 위를 지나 일출을 볼 수 있는 고도의 동쪽 끝으로 갔다. 일출을 잡기위해 카메라 삼각대를 준비해서 기다렸지만 해안 멀리낀 구름은 거문도의 일출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나 일출은 볼 수 없었지만 거문도의 아픔다운 풍경은 나의 아쉬움을 금방 잊어버리게 하였다.

P4139350 고도의 동쪽 끝에서 일출을 기다렸으나...

멀리보이는 앞쪽섬이 소삼부도, 뒤쪽섬이 대삼부도이다.

일출보기를 포기하고 다시 영국군묘지로 내려왔다. 묘지위쪽에 정자가 있고 주변엔 유채꽃이 만발하여 거문도 내해의 풍경과 어울어져 한폭을 그림을 만들고 있다. 차라리 아침해가 안보인게 다행인가 싶었다.

P4139356 오른쪽 보이는 섬이 안노루섬

묘지가 남향으로 태양이 있으면 역광이 되어 제대로 사진이 나올 수 없는데, 나름대로 아름다운 거문도의 풍경을 담을 수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어 마음껏 화면에 담았다. 유채꽃과 어울어진 주변경치가 너무 아름다웠다.

P4139360 왼쪽이 거문도 등대가 있는 수월산, 오른쪽이 보로봉이다.
P4139362
P4139364
P4139370
P4139372
P4139373 동백꽃은 유채꽃과 어울어져 한참 절정을 향해 타오른다.
P4139376 바로위에서 본 영국군 묘지

묘지 바로 앞의 거문도 내해와 목넘어, 그리고 양쪽의 산이 훤-하게 보인다. 그리고 어제 트래킹한 산능선이 그대로 보인다.

P4139388 영국군 묘지

묘지에는 화강암 비석과 나무 십자가, 두 개의 묘비가 서 있다. 이곳에 영국군 수병 셋이 누웠다. 화강암 묘비에는 영국군의 거문도 점령 당시인 1886년 6월 11일 폭탄 사고로 죽은 수병 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P4139384 영국군 묘지

나무 십자가는 영국군이 물러간 후에 묻힌 영국군 병사의 묘다. 나무 십자가 묘지의 주인은 1903년 10월에 사망한 군함 알미욘 호의 수병 알렉스 우드다. 영국군은 거문도를 떠난 후에도 1930년대까지 항해 도중 이 섬을 드나든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에는 고도(古島)(현 거문리)의 하늘땀 (여객선 동북쪽 100m 지점)에 있었는데 1910년 한일합병과 더불어 일본인에 의하여 현재에 자리로 이장하였다.

P4139387 영국군 묘지

서구식 비문에는 "1886년 3월 알바트로스호의 수병 2명이 우연한 폭발사고로 죽다. 월리암, J.메레이와 17세 소년 찰스 댈리"로 새겨져 있고, 십자가에는 "1903년 10월 9일 알비온호 승무원 알렉스 우드 잠들다" 라고 새겨져 있다.

P4139379 묘지아래 돌담
P4139381 묘지아래에도 벤치가 있고 유채꽃이 만발했다.
P4139390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안노루섬
P4139395 밖노루섬
P4139398 안노루섬과 삼호교
P4139399 안노루섬
P4139400 폐가의 담장
P4139402 가운데가 목넘어
P4139403 거문도 초등학교 : 과거 영국해군부대 터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1885년 4월 15일, 영국 군함과 수송선은 거문도를 점령한다. 영국제국주의 해군은 1887년 2월까지 거문도에 주둔한다. 이른바 '거문도 사건'이다.

영제국주의는 러시아 견제를 핑계로 거문도를 점령했지만 당시 조선 정부는 거문도가 점령당한 사실을 20여일 동안이나 알아채지 못했다한다.

P4139438 거문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본 마을

영국은 그 당시 영국 해군성 차관이었던 해밀턴의 이름을 따 거문도를 해밀턴 항(Port Hamilton)으로 이름 붙였으며 영국군대는 사람이 적게 살던 고도에 군대 막사를 짓고 항만 공사를 했다. 테니스 코트와 당구장 등도 이때 처음 거문도에 생겼다한다.

P4139404 내려가는길

2년 동안 거문도 주민과 영국 점령군은 비교적 사이좋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영국군은 주민들에게 치료약을 공급하고 노임을 지불해 가며 공사 일을 시켰다. 섬 주민들과 마찰을 피하기 위한 영국군의 유화 전략이었겠지만 조선 왕조 하에서 강제 부역에만 종사했던 섬 주민들은 그것을 고맙게 여겼다한다.

섬 주민들은 영국군과 협상 차 거문도에 온 조선관리들에게 "자기 백성을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노임 받고 일하는 것을 방해 한다"고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전한다. 조선 왕조 지배 세력의 섬에 대한 수탈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P4139405 거문항 거리
P4139406 건물이 일본식이다.
P4139407 거문항

다음은 거문도에서 다시 나로도로 갑니다.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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