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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서산여행] 조선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해미읍성'

by 드래곤포토 2012.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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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해미읍성'

충남 서산의 해미라는 지역의 이름은 조선 태종 때 정해현과 여미현을 합하면서 두 현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서 지어졌다고 합니다.

해미읍성은 조선초기의 대표적인 석성으로 충청도 지역의 군사방어를 담당했던 병영성(兵營城)입니다. 조선 제3대 태종대왕이 1416년에 군사를 이끌고 도비산에 올라 서산태안지방의 지형을 보면서 덕산에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해미로 옮기도록 결정합니다.

이에따라 태종 17년(1417)부터 세종3년(1421)사이에 축성되었으며, 효종3년(1652)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230여년간 종2품 병마절도사가 주둔하는 충청도의 군사중심지로써 국방은 물론 내란 방지 포호(捕虎) 등의 임무를 맡기도 하였습니다.

IMG_5882 진남문

성문은 동, 서, 남 세곳에만 있고 북에는 암문이 있습니다. 주 출입구인 진남문은 다듬어진 돌로 된 아치형 홍예문입니다. 성밖에는 해자가 둘러져 있는데 발굴조사를 통해 북쪽해자의 일부를 복원해 놓았으며, 기록에는 성벽위에 여장과 옹성이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성곽둘레는 1800m, 높이는 5m로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성 주변에 탱자나무가 심어져 탱자의 한자음을 취한 지성이라고도 합니다.

이 읍성에는 병마절도사와 겸영장이 집무하던 동헌을 비롯한 관아와 객사 등의 건물이 꽉 들어차 예전엔 장관이었다고 합니다. 1578년(선조11)에 이순신 장군이 군관으로 10개월간 근무한 적이 있으며, 조선시대 말기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IMG_5788 진남문 안쪽

진남문 안쪽위에는 '황명홍치4년신해'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글귀를 통해 축조된 시기가 1491년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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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문에 올라 서문쪽으로 성곽을 따라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해미읍성은 낮은 산과 평지를 이용하여 쌓은 평산성으로 성곽의 하단은 큰 돌로 쌓고 위로 오를수록 작은 돌을 용하였는데 안쪽은 흙으로 채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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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밖으로 네모지게 쌓아진 치도 볼 수 있습니다. 치는 성벽에서 적의 접근을 빨리 관측하고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정면 또는 측면에서 격퇴할 수 있도록 성벽의 일부를 돌출시켜 쌓은 구조물입니다..

IMG_5809 멀리보이는 객사

객사는 건물의 중앙 정청에 궐자가 새겨진 전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관아의 대소관원들이 임금에 대한 예를 올렸던 곳입니다. 이곳은 새로복원되었으며 일제시대때에는 학교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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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있는 성은 거의 대부분이 산에 쌓은 산성이거나 강을 끼고 건축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해미읍성은 평지에 타원형으로 지은 것으로 한반도에서 이런 형태의 성은 드물다고 합니다.

IMG_5820 해자

원래 해미읍성성주위에는 해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북문쪽에 해자를 복원해 놓았습니다.

IMG_5823 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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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으로는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어 멋진 풍경을 만들어 줍니다.

IMG_5834 청허정

청허라는 뜻은 '잡된 생각이 없어 마음이 맑고 깨끗하다'라는 뜻입니다. 청허정은 해미읍성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이곳에 올라서면 천수만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과거 시회를 하거나 문인들이 시를 읊던 곳입니다.

해미읍성 시설 중 하난인 청허정은 그 역사가 오래되었는데 성현(1439~1504)이 지은 청허정기에 그 유래가 전해 지고 있습니다. 청허정은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부임한 조숙기가 성종 22년(1491)에 세운정자입니다.

당시 충청도병사절도사영성(해미읍성)을 들렀다간 문인들이 가면서 남긴 시들이 남아있습니다. 조위가 충청도병마절도사 이손(1439~1520)에게 올린 청허정이란 시가 있고 절도사와 수령이 복무를 마치고 함께 청허정에 모여지은 청허정연회도, 이경전(1567~1644)이 지은 시가 전하고 있습니다.

1872년 고지도에는 청허정이 고지로 표기된 것으로 볼때 고지도 작성 이전에 청허전이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 강점기에는 청허정자리에 신사를 만들어 신사참배를 강요하였습니다.

현재의 청허정은 과거 관련기록을 근거로 2011년에 개축하였습니다.

IMG_5847 동헌

동헌은 병마절도사를 비롯한 현감겸영장의 집무실로서 관할지역의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들이 행해지던 곳입니다. 일제시대에는 이곳이 면사무소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IMG_5857 해미읍성의 돌계단

해미읍성에서 유일한 돌계단으로 청허정에 오르는 계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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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5865 민속가옥

조선시대 민가인 서산지역의 3칸초가집이 만들어져 있어 우리나라 농촌 민가의 일반적인 형태를 볼 수 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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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읍성은 우리나라의 천주교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곳입니다. 교도들을 투옥하고 문초하였던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터만 남아있던 옥사를 발굴 작업뒤 복원 재현하였습니다.

1935년에 간행된 '해미 순교자 약사'의 기록을 토대로 복원하였으며 내옥과 외옥이 있고, 각각 정면 3칸 건물로 남녀의 옥사가 구분되어 있습니다.

1790년 부터 100여년간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법으로 규정하여 이곳에서 투옥 및 처형을 하였는데,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도 이곳에서 옥고를 치르고 순교하였다 합니다.

IMG_5870 해미읍성 회화나무

해미읍성에서 가장 우뚝선 나무로 회화나무인데 호야나무라기도 합니다. 파란하늘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지만 한편으로는 슬픈역사를 지니고 있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호야나무는 수령 300년 이상된 나무로 1780~1880년대에 이곳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끌어내어 이 나무의 동쪽으로 뻗어있던 가지에 철사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나무가지는 1940년대 태풍으로 부러져 지금은 볼 수가 없습니다. 1969년 폭풍으로 가운데 줄기가 부러졌으나 지금은 외과수술및 토양개량으로 잘 보호관리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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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있는 성을 가보면 성안에 마을이 있고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건물이 석조건물이라 그대로 보존이 가능하여 옛모습을 지니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부분 성을 가보면 복원이라는 미명하에 기존 살고 있는 사람들 내쫓고 건물을 헐어 그저 잔디밭으로 만든 공원을 만들어 놓는 것 같습니다.  해미읍성은 돌로 쌓은 성곽안의 횡한 잔디밭 공원인 것 같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여행 TIP

소재지 :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32-2
전화 : 041-660-2540
입장료 없음

 서산 해미읍성 위치도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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