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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신현동 회화나무, 인천 시내의 유일한 천연기념물

by 드래곤포토 2021.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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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시내의 유일한 천연기념물, 신현동 회화나무

회화나무는 궁궐안에 흔히 심었고, 고위 관직의 품위를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만년을 보내는 고향 땅에도 회화나무 심기를 즐겨했다고 하네요.

옛 선비들이 이사를 가면 마을 입구에 먼저 회화나무를 심어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는 선비가 사는 곳임을 알렸다고 합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회화나무가 인천 서구 신현동에 500여년을 지키고 있다하여 찾아보았습니다.

인천 신현동 회화나무는 네비게이션을 치면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도착해서 보니 길 안쪽의 연립주택 사이로 나무가 보입니다. 그러나 나무앞에는 주차장이 없고 골목은 비좁고 복잡하여 골목길 가장자리의 노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접근했습니다.

회화나무 주변은 연립주택으로 둘러쌓여 있고 골목길마다 차들이 주차가 되어 있어 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회화나무를 상징하듯 연립주택 벽면에는 회화나무를 형상화한 그림이, 바닥에는 회화나무길을 알려주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 천연기념물 회화나무를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회화나무는 모양이 둥글고 온화하여 집에 심으면 가문에 큰 인물이나 학자가 난다고 하여 학자나무로도 불리웁니다.

이 나무는 오직 양반가에서만 정원수로 심어질 정도로 길상목(吉祥木)으로 여겨져 왔으며, 민간 및 한방에서는 항염, 지혈의 효과가 있고 고혈압, 치질, 습진 치료에 탁월한 효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현동 회화나무는 지정일 기준으로 약 5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약 22m, 둘레는 5.59m로 가지가 사방으로 길게 뻗어 있습니다.

이 나무는 마을의 당산(마을의 수호신이 있다고 하여 신성시하는 산)인 도당산에 있다가 큰 홍수로 인하여 마을로 떠내려와 지금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고 하는 설과, 어디에서 온지는 알 수 없지만 바닷물에 떠 내려와 현재 위치에 심어졌다고 하는 설이 있습니다. 이로보아 이 나무는 원래 현 위치가 아니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신현동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의 꽃이 위쪽에서 먼저 피면 풍년이 오고, 아래쪽에서 먼저 피면 흉년이 든다고 하여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나무는 마을의 작은 당산 역할을 했으며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을 비는 마을 제사를 지내 왔습니다.

마을 제사는 6.25 전쟁으로 인해 맥이 끊겼다가 1980년경부터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에도 마을 제사는 매년 음력 5월 28일에 마을 원로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자라 온 신현동 회화나무는 문화적, 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습니다.

회화나무 옆에는 카페, 체육시설 등이 있는 회화마을 커뮤니티센터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2020.6월에 개관하였다고 하네요. 원래 이자리는 연립주택이 있었는데 천연기념물 회화나무 주변의 낙후된 쉼터를 공동체 활동이 가능한 열린 공간으로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회화나무 주변은 지금 사방으로 주택들이 둘러싸여 있지만 10년 전까지만 해도 낮은 언덕만 돌아서면 멀리 서해 바다가 훤히 보이는 풍요로운 들판이었다고 합니다.

회화나무 주변을 정비하고 아담한 정자와 어린이를 위한 놀이기구를 놓아 작지만 잘 꾸민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지만, 500여년 살아온 신현동 회화나무는 주변환경 때문에 왜소해 보입니다.

인천시는 천연기념물인 서구 신현동 회화나무의 유전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DNA 추출 및 복제나무 육성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농촌에서 도시로 변한 땅에서 잘 보존하여 천연기념물의 명맥이 오래오래 유지되었으면 합니다.

☞ 여행 TIP

▷ 소재지 : 인천시 서구 신현동 131-7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이창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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