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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영주여행] 충절의 역사를 되새기는, 금성대군신단

by 드래곤포토 2019.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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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절의 역사를 되새기는, 금성단

금성대군은 세종의 여섯째아들로 세조의 동생입니다. 순흥마을을 다스리던 이보흠과 함께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금성대군이 처형된 곳에 홍천군 현감 이대근에 의해 비밀리에 단이 마련되고 숙종때 공인을 받게됩니다.

경북 영주시 순흥마을에 금성대군의 신단이 있으며 매년 2차례 금성대군 추모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2019년 11월 금성대군 신단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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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 신단은 소수서원 북쪽 소백로옆에 있습니다. 길옆으로 금성대군 신단이란 안내판이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소수서원 방문시 시간을 내어 잠시 들러볼 수는 위치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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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조 2년(1457)에 금성대군이 성삼문 등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경북 순흥마을에 귀향을 살며 갇혀 살았습니다.

금성대군은 이 곳에서 순흥부사 이보흠 및 고향의 유림과 더불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실패하여 순절하게되는데 이 곳은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마련된 제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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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 신단은 2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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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문을 들어서면 전사청과 재실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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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문에는 금성단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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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문을 들어서면 토석담장이 둘러쌓여 있고 조촐한 신단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기단은 장태석으로 조성되어 있고 기단 앞 3곳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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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단위에는 품(品)자 형으로 3개의 돌단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금성대군의 신단은 중앙 뒤쪽에 있는 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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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 신단 앞에 있는 서쪽 단은 이보흠을 모신단이며, 동쪽 단은 함께 순절한 선비들을 추모하기 위한 제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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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대군의 신단 왼쪽에는 높이 1.4m, 폭 55cm, 두께 24cm의 금성대군성인신단지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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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의 뒤쪽(북쪽)에서 본 모습입니다. 원래 금성단이라 불리웠으나 2007.12.31 국가사적 제 491호로 지정되면서 금성대군 신단으로 바뀌었습니다.

단종 복위가 실패하자 순흥부는 없어졌습니다. 그 후 숙종 9년(1683)에 순흥부가 복원되고 순절 의사의 원한이 풀리자 숙종 19년(1683)에 부사 정중창이 금성대군이 귀향살이하던 자리에 처음으로 단을 쌓았고 숙종 45년(1719)에 부사 이명희가 삼단으로 고쳐 쌓았습니다.

그 후 영조 18년(1742)에 경상감사 심성희가 서쪽으로 30~40보 옮겨 단소를 정비하여 순의비를 세우고 관리사를 지어 매년 봄, 가을로 제향을 지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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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종복위의거를 주도하다가 희생된 절의의 상징 금성대군(1426~1457)에 대해 지역민들은 그를 원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금성대군신단을 설치하여 제향하고 성황제를 통해 그의 충정을 민간신앙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금성대군 신단 앞쪽에는 금성대군신단 부터 소수서원을 거쳐 피끝마을까지 금성대군 충절의 역사를 되새기는 의미의 단종애사 대군길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피끝마을은 단종복위와 연루된 수많은 순흥마을 사람들이 처형되어 흘린피가 죽계천을 타고 지금의 안정면 동촌마을까지 흘렀다하여 피끝마을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 여행 TIP

▷소재지 : 경북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67번길 5
▷주차비 : 없음
▷전화 : 054-639-6062(영주시 관광산업과)

 

- 드래곤의 사진속 세상풍경 / 이창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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